[World@now] 중 '엿듣기 사이트'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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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베이징(北京)의 베이징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왕리징(汪麗靜)은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불과 하루 전 버스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인터넷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신의 얘기만 실린 게 아니었다.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 수집한 각종 재미있는 대화, 인상적인 말들이 총집합돼 있었다.

중국에선 요즘 이와 같은 '도시 도청(盜聽)'이 인터넷에서 뜨고 있다. '도시 도청'이란 시내 곳곳에서, 혹은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우연히 엿들은 말 가운데 흥미있는 것들을 골라 인터넷 사이트에 띄우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다. 도시별로 '베이징 엿듣기' '충칭(重慶) 엿듣기' '상하이(上海) 엿듣기' 등의 사이트가 속속 출범하고 있다.

이런 사이트에는 비단 말만을 띄우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 나온 상황, 주변의 분위기 등을 실감나게 전한다. 왜 그 말이 재미있는지, 왜 인상적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어이 노인네! 와요, 와서 앉으슈!"

-버스에서 창가에 앉은 할머니가 서 있는 할아버지에게 손짓하며. 그 할아버지 바로 옆에는 한 20대 여자가 바위처럼 앉아 있었다.

"안 데려 갈거야? 그럼 난 죽어버릴 거야."

-한 어린아이가 온천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부모를 원망하며.

'도청 사이트'의 운영자들은 "도시 곳곳에서 채집된 다양한 표현들은 시류의 변화, 인심의 소재, 대중의 관심거리를 잘 보여주는 한편의 '민심 기록장'"이라고 주장한다.

위에 소개된 대화에서는 무너져 가는 경로사상, 그리고 한 자녀 낳기 운동으로 인해 자꾸만 버릇없어져가는 아이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다. 당사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인 생각과 생활을 담은 말들을 마구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이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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