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돌연 김승규 국정원장을 경질하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원장이 사의를 표했다고는 하나 대통령이 그를 호출한 자리였던 만큼 사실상 경질이다. 통일.외교.국방 장관들이 사의를 표할 때도 김 원장 교체 얘기는 없었다. 눈에 띄는 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외교안보팀 개편' 맥락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 교체 시기가 더욱 이상한 것이다. '386 간첩 혐의 사건'은 관련 인원으로 볼 때 현 정부 들어 가장 큰 대공사건이다. 정계.권부에 포진한 386 운동권 출신들과의 연계성이 주목되고 민주노동당 전.현직 간부들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국정원 지휘부가 수사를 철저히 지휘해 진상을 파헤쳐야 함에도 정작 대통령은 수장(首長)을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다음날 노 대통령은 외교안보팀 개편론에 대해 "전장에서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왜 중대 대공사건의 한가운데서 말을 갈아타는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386 주사파 운동권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한 혐의로 구속되는 걸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은 이들의 적색 자장(赤色 磁場)이 국가의 핵심부에까지 미치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386 운동권의 결속력과 교류 능력은 다른 세대보다 강력한 것이어서 그럴 개연성을 부인 못 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람들은 그동안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고 강한 반미 색채를 보여온 민노당의 활동에도 이들의 영향이 미친 것은 없는지 의심한다. 혹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 내에 포진한 386 핵심인사들에 대한 사건의 파장을 의식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국정운영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민노당의 반발에도 신경 쓰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김 원장을 경질하는 것은 아닌가.
김대중 정부 이래 약화돼 온 대공업무에 대해 김 원장은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은 '말을 갈아타는 오해'를 피하고 공안업무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김 원장 교체를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