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산티아고 부교구장 발레쉬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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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비카리아가 발족하게 된 배경과 경위는.
▲잘 알다시피 73년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사쿠데타가 발발하고 난 후 엄청난 탄압이 뒤따랐다. 정치인은 물론 지식인·노동자 등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군사정권의 폭정에 대해 단 한마디의 불평이나 불만을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질식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 같은 철권통치에 대항키 위해 73년 말 카톨릭·개신교·유대교 등의 성직자들로 구성된 초교파적인 평화위원회(Comite Para la paz)가 태동했으나 2년도 채 못된 75년 말 피노체트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고 말았다.
평화위의 해체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는 국민들을 더욱 좌절케 했다.
그래서 강압에 의해 침묵 당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내주기 위해 다시 평화위원회 비슷한 천주교·개신교·지식인·법조인 등 민주세력들을 규합, 75년 l월에 비카리아를 창립하게 됐다.

<민주세력들 규합>
-현재 비카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 수는.
▲성직자·변호사·사회전문가를 비롯해 일반 행정직과 관리직을 포함해 1백 명 정도다.
-비카리아가 전개해온 주요 활동은.
▲크게 보아 세 가지로 대분 할 수 있다. 첫째는 법률적인 지원과 홍보업무를 들 수 있다. 정치범들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영장도 없이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또 거리에 피범벅이 된 채 시체로 나뒹굴어도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위해 법정에서 변호를 맡거나 증인을 찾아 당국이 저지른 행위가 명명백백한 정치적 탄압사례임을 증명해 보이는 한편, 이 같은 사실을 국내·외에 적극 알리는데 주력했다. 이런 투쟁과 홍보가 거듭되면 독재정권에는 유형무형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교육이다. 억압받고 가난한 자들이 스스로를 위해 일할 수 있고, 또 자주능력을 갖도록 의식을 깨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는 식량지원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배를 물로 채우다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해 3∼4일분의 식량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피노체트 집권 기간 중 정치적 탄압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는.
▲우선 8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양민이 체포·투옥됐다. 또 9백 명이 실종돼 행방은커녕 생사를 확인할 수 없으며 2천명 이상이 처형당했다.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인권운동을 폈을 때 엄청난 탄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정권이 가하는 탄압은 엄청났다. 대표적인 예로 군사정권은 우리 단체의 변호사와 성직자들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국외로 추방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또 특별히 현행법에 저촉되는 사실이 없는데도 긴급조치에 걸어 체포하고 투옥시켰으며, 심지어는 괴 전화나 괴 문서를 통해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가족들이 거주하는 가옥을 폭파해 몰살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을 가해오기도 했다. 탄압의 대표적인 사례는 85년 4월 우리 단체의 핵심멤버였던 사회학자 호세 마누엘 파라다씨를 살해한 것이었다.
-추방되거나 살해된 회원은 몇 명이나 되나.
▲75년 말 이후 추방된 멤버는 변호사 5명, 성직자 2명 등이나 쿠데타 직후에는 40여명의 성직자가 추방되고 8명의 성직자가 투옥되기도 했다. 또 75년 말에도 8명의 성직자가 인권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 투옥되기도 했다.
-인권운동을 하거나 가난한자들을 위해 식량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을 텐데.

<8만 명이나 투옥>
▲물론이다. 우리의 자금 원은 대다수가 유럽의 각종 단체나 기구 등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예를 들자면 미국·영국 등 서방 선진국들의 개신교 교회로부터의 기부금 등이 그런 것이다. 나라 이름을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몇몇 유럽 국가 정부로부터의 기부금도 있었다.
또 우리 사업에 뜻을 같이하는 국내 후원자들과 가난한 신자들이 「나눔의 사랑」으로 내놓는 금품이나 달걀 한 개, 우유 한 통씩이 모아져 무료급식을 도와주고 있다.
-피노체트의 독재 통치도 이젠 끝났다. 그렇다면 비카리아는 과거 피노체트 정권이 저지른 인권탄압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무엇보다도 「진실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16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어떤 일들이 자행됐으며 실종된 사람들은 어디에 있고, 또 살해된 자의시체는 어디에 매장돼 있으며 과연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지휘하에 이뤄졌는가 하는 책임소재가 반드시 국민 앞에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책임자 처벌이다. 이는 보복이나 응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암울하고 끔찍했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피노체트가 음양으로 현 민간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책임자 규명과 처벌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겠지만 우리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아울러 16년 동안 일어난 모든 일들을 국민들에게 알려 독재정권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확실히 체감케 하고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할 것이다.

<해방신학관 무관>
-에일윈 정부가 들어서 민주화가 성취되고 인권탄압이 없어져도 비카리아는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키 위해 존재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키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빈민구제 사업은.
▲빈민구제사업도 우리가 줄곧 관심을 기울여왔던 문제인 만큼 계속할 것이다. 앞으로 l년 동안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방식대로 식량지원 사업을 하고 1년 뒤엔 현재 우리가 맡고 있는 사업을 정부가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행하게 하도록 할 생각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정부의 구제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극빈자구제를 비롯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청소년 문제, 알콜중독자, 범죄자 순화사업 등 보다 광범위하고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부문에 뛰어들 계획이다.
-비카리아와 해방신학과의 관계는.
▲우리는 해방신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들을 해방신학과 연계해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한마디로 무관하다.
-그렇다면 해방신학에 대한 견해는.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글 이은윤 특집부장 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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