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과 '각별했던' 이종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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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두 달 전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비공식 간담회(8월 13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잡아 두는 이유는 그래도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북한도 (우리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실질적으로 이끈 '실세 중의 실세'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는 대북 관계를 연구한 학자 출신이다. 1994년부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해 온 그는 2001년 여름, 북한 관련 자문역으로 노무현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노 대통령의 당선 이후 윤영관 서울대 교수, 서동만 상지대 교수, 서주석 국방연구원 연구위원 등과 대통령직 인수위 통일외교안보 분과에서 외교안보 정책의 골격을 다듬었다. ▶북핵 불용(不容)▶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정부의 '북핵 3원칙'을 만든 것도 이 팀이다.

이 장관에게 노 대통령은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당선자 특사 자격으로 북한에 보냈으며, 정부 출범 뒤 차관급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직을 맡겨 외교안보 정책을 조율하게 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을 '평화 번영 정책'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대북 포용 정책을 설파해 왔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자주파의 선봉' '탈레반'이라는 별칭을 들으면서도 외교안보 관련 핵심 사안에서 노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2003년 9월 미국이 이라크에 한 개 사단 규모의 전투병 파병을 요청해 파병 규모를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었을 때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이 장관은 대규모 파병을 요구하는 보수 진영의 거센 공격을 받으면서도 비전투병 3000명 파병안을 고수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그는 NSC 사무차장이 된 지 채 3년이 되기 전인 올해 2월 통일부 장관에 기용됐다.

북한 미사일 발사 후인 7월 25일 이 장관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가장 위협하고자 한 나라가 미국이라면 논리적으로 미국이 가장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논란을 빚을 당시만 해도 노 대통령은 직접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면 한국 각료들은 국회에서 혼나야 하느냐"고 두둔했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뒤 노 대통령과 이 장관의 거리는 눈에 띄게 멀어졌다. 대통령 면담 횟수도 줄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장관이 다른 요직에 배치될 가능성에 대해 "본인이 학계로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부인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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