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단체 운영 자금 "주먹구구"|로열티 받은 YMCA에 대한 제명 논란 계기로 살펴본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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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민간 소비자 운동의 방향과 성격을 결정짓는 운영 자금은 과연 어떻게 마련돼야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가 최근 소비자계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10개 소비자 단체들의 연합 기구인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소협)가 지난 3월 로열티 (매년 5천만원씩 5년간)를 받고 한 의류 업체에 심벌 마크를 빌려줘 Y의류를 판매케한 대한 YMCA 연맹에 대해 제명을 거론하면서부터.
소협은 지난 6월 이에 대한 결정을 하려다가 일단 보류, 오는 12월까지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데 최근 논란이 거듭되면서 쟁점이 부각되고 있다.
소협은 정관 9조에 의해 『상업적 행위로 인한 소비자 보호 업무에의 지장 초래』라는 제명의 명분을 갖고 있으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같은 결정이 앞으로 소비자 단체가 기업과 어떻게 관계를 정립해야하는가에 대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될뿐더러 Y의 사회적 위치나 역할의 비중이 크고 Y의 제명이 어느 소비자 단체에도 이롭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소비자 문제 전문가들은 그동안 말이 많았던 민간 소비자 운동 기금의 조성 방법에 대해 이 기회에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현재 민간 소비자 운동 기금은 정부 보조비만 뚜렷하게 밝혀져 있고 기타 자금원인 회원의 회비, 독지가의 후원금, 기업이나 관련 기관의 프로젝트 대행비, 회장의 개인적 조달 자금, 기업체로부터의 직·간접적 지원금인 회지 광고, 바자 협찬, 강사 초빙료 등은 공식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 보조금 (90년 기준)은 경제기획원의 4억9천7백만원, 서울시 2억1백만원, 환경처 1천2백만원 등으로 소협에 일률적으로 지급되고 있으며 회원 10개 단체가 협의, 지방 지부의 숫자·사업 내용 등을 기준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주된 활동을 하는 각 단체 서울 본부는 사업비가 모자라 대부분 자체적으로 조달해 쓰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기획원 지원금은 대부분 지부 활동비로 쓰임).
이에 대해 서울대 이기춘 교수 (소비자 아동학과·한국소비자 학회장)는 『소비자 단체가 감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재정적 자립이 이뤄져야한다』며 『주먹구구식의 재원 확충보다 선진국처럼 소비자로부터의 신뢰를 확보해 회비와 각종 소비자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의 책자 판매 기금 등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단체의 국고 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경제기획원 유통 소비과 김봉익 사무관은 『소비자 단체가 소비자의 후원에 의해 자립할 수 있으려면 우선 체질 개선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전제한 후 『경제기획원이 78년 이후 보조금을 지급한 이래 10여년 동안 소비자 단체사업의 발전을 엿볼 수 없고 단체마다 하는 일이 같아 비효율적이며 단체직원도 능력보다 친분 우선으로 기용되는 듯한 인상이 들어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송보경 교수 (소비자 경제학)는 『국제 소비자 기구 (IOCU)는 기업의 광고를 회지에 싣거나 기업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회원 단체는 자격을 상실토록 정관에 못박고 있다』며 『현재 국내의 소비자 단체는 정부나 회비, 외부 원조에 그 재정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회비나 회지 판매 등 자체 수익을 통한 재정 확보가 가장 이상적이므로 정확하고 새로운 정보 제공을 위한 전문 인력 확보와 연구 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비자 보호과 박정부 계장은 『정부가 민간 소비자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 올해도 지원 예산을 35% 증액했지만 정부는 기업 육성과 소비자 보호의 양면적 책임이 있고 실제로 보조금 범위만큼 정부에 의해 소비자 단체가 통제 당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민간 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려면 떳떳한 자립의 기틀을 마련하는 노력을 쏟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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