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문화 대백과」 이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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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앙일보 7월30일자 (일부 지방 31일자) 「나의 제언」란에 현재 15권까지 나온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발행, 총 27권)에 「일본식 용어와 어투가 많다」는 글이 실려 있어 편집 책임자로서 몇마디 해명 아닌 고언을 해두지 않을 수 없다.
제언자는 위의 글에서 네가지 용어와 한가지 어투를 들어 일본식, 즉 왜식이라 비난하면서 사전이 중대한 오류를 범하기나 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 하나는 백두산맥을 백두대간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사전에는 분명히 백두대간으로 쓰고 있지 백두산맥으로 쓴 일이 없다. 그러나 산맥이란 말을 반드시 일본식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농악을 풍물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인데 농악과 풍물은 꼭 같다고 할 수 없다. 농악은 현재 무형문화재 공식용어이기 때문에 사전의 성격상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즉 「강릉농악」 「이리농악」같은 무형문화재 이름을 제멋대로 「강릉풍물」 「이리풍물」 이라고 고쳐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굳이 풍물이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풍물보다 풍물놀이라고 해야 맞다. 그렇더라도 엄격히 따지면 농악과 풍물놀이는 다르다.
셋째로 창덕궁 안의 비원을 일본식 명칭이라 하면서 금원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원이란 이름을 반드시 일본식 명칭이라 할 근거가 박약한데다 금원 이외에 후원 또는 북원이라고 불린 사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그대로 남는다. 북원·후원 등 호칭은 보통명사로 간주되기 쉬우며 금원 또한 고유명사라 할 수 없다. 금줄이 검줄 (왕검줄)에서 비롯된 말이듯 금원의 본시 말은 검원 (임금의 정원)일지도 모를 일이다.
넷째로 지적한 제주도의 해녀를 잠녀라고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잠녀란 말이 제주도 속어요, 거기다 해녀에 대한 비칭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더욱이 해녀는 제주도에만 있었던 집단이 아니라 본토 남해안 일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충분한 연구와 분석도 없이 즉흥적으로 사계의 전문가 3천여명이 참여하여 만든 문화대업을 비방하는 일은 그야말로 경솔한 일이며 부끄러운 식민유산 대물림을 하느냐느니. 문화국을 야만국으로 만드느냐느니 하는 원색적인 용어를 쓰는 행위는 결코 떳떳한 한국인의 대의명분이 아닐 것이다.
제언자가 「…에 있어서」란 말투를 일본식 어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일본제와 영국제를 혼동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그런식으로 따진다면 백과사전이란 말을 유서라고 고쳐야 할 판이며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닌 부끄러운 사전이 되고 만다. 사전에도 사전이 있고 사전이 있다. 백과사전은 사전인데, 이를 구별해주는 우리 고유어가 있는가, 그리고 있다해도 그 말을 지금 쓸 수 있는가를 묻고 싶다. 박성수 <민족문화백과사전 편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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