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열 명 중 일곱 명 "수행평가 점수 불만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1. 서울 D고 2학년인 이모(17)군. 최근 '카인의 후예'를 읽었다. 수행평가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학생 간) 점수를 나누기 위해서인 듯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며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을 꼼꼼하게 분석까지 하라고 했으니 점수가 잘 나올 턱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점수에 불만을 가진 친구가 많다"며 "더욱이 중간고사 즈음의 과제여서 더 그렇다"고 전했다.

#2. 서울 E여고 2학년 김모(17)양도 독서목록의 책을 다 읽느라 고생했다. 그는 그러나 성적 걱정은 안 한다. 그는 "제때 제출만 하면 만점"이라며 "수행평가는 원래 점수를 주려는 과제"라고 했다. 그는 수행평가를 두고 "형식적인 평가"란 말도 했다.

도입 8년째를 맞고 있는 수행평가제가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습 과정을 보자는 당초 취지와 다르게 운영된다는 것이다. 특히 고교생들 사이에선 점수를 둘러싸고 불만이 많았다. 학생부 등급제의 영향이다. 고교생 열 명 중 일곱 명 꼴(74.3%)로 점수에 불만을 가진 적이 있다고 답할 정도다. 수행평가는 전체 성적의 대략 10~30%를 차지한다.

17일 국회 교육위 소속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이런 내용의 초중고생 대상 설문조사 자료를 공개했다. 전국 2만2992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중 고교생은 6558명이었다.

조사결과 응답 학생의 절반(55.9%)이 과제 점수에 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고교생 열 명 중 네 명(40%)은 점수 때문에 항의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수행평가의 실효성에도 수긍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초등학생 가운데는 수행평가가 학업 성취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경우가 31%였지만 고교생은 8.6%에 불과했다.

일부에선 가르치지도 않은 걸 시험 본다는 불만도 있었다. 서울 한 외고 1학년 자녀를 둔 김모(46)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체육 과외를 해야 했다"며 "수업 시간에 안 배운 농구.배구.뜀틀을 일정대로 수행평가를 하겠다고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고개를 내둘렀다.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