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중 국적 폐지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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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민의 천국'인 캐나다 정부가 이중 국적 제도 폐지를 검토 중이라고 현지 일간지 글로브&메일이 19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 캐나다 이민부의 피마 랄룽파 대변인은 "향후 몇 달간 시민권의 책임과 권리에 대해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캐나다 정부는 1977년부터 이중 국적을 허용해왔다. 캐나다 정부가 이중 국적 제도에 대한 재검토에 나선 배경에는 "이중 국적자들이 캐나다 국적을 보유하면서 생기는 혜택만 챙기고 책임은 회피한다"는 비판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8월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당시 불거진 캐나다 국적자의 대피 문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레바논에는 캐나다와 레바논 국적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중 국적자가 5만여 명에 달했다. 이 중 1만5000명이 대피했고, 캐나다 정부 예산 8500만 달러(약 816억원)가 투입됐다. 하지만 대피자의 절반가량인 7000여 명은 중동 지역의 상황이 진정되자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러자 캐나다 정치권에서는 "이중 국적자들이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위기 때만 정부의 도움을 약삭빠르게 챙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이민 사회는 국적 선택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이중 국적자만 50만 명이다. 중국.한국 등 외국 거주자를 포함할 경우 400만 명이 넘는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이 늘면서 캐나다 국적을 보유한 채 홍콩에서 활동하는 이중 국적자가 25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캐나다 무역협회의 새뮤얼 영 이사는 "이중 국적 덕분에 사업상 많은 혜택을 받아왔는데 제도가 변경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 같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가 쉽사리 제도를 변경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민법 전문 변호사인 조슈아 손은 "전 세계 90여 개국이 이중 국적을 허용할 정도로 이 제도는 세계적 추세인 데다 아직 폐지 논의가 초보적 단계이기 때문에 관련 법 개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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