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핵우산 제공' 조항 삭제하겠다던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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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지난해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 때 공동성명에서 핵우산 관련 조항을 삭제하자고 미국에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이 반대해 무산됐으나, 이 정권의 안보 색맹이 어느 수준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충격적인 사례다.

1978년부터 SCM 공동성명에 들어간 미국의 핵우산 제공은 대북 억지력의 핵심으로 작용해 왔다. 북한이 도발하면 핵으로 응징하겠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김일성도 적화통일을 막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여겼겠는가. 그럼에도 이를 우리 스스로 삭제하자고 했으니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특히 관련 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지몽매한 정책을 추진한 곳이 다름 아닌 청와대였다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청와대가 내세운 이유도 가관이다. SCM에 앞서 열렸던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키로 했으니, 핵우산 조항이 들어갈 경우 북한의 반발이 우려됐다는 것이다. 당치도 않은 궤변에 불과하다.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채택됐지만 다음날부터 경수로 제공 문제를 갖고 대치국면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당시 북한은 원자로에서 사용 후 핵 연료봉 8000개를 인출하며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등의 발언으로 핵 위협을 가중시켰다. 이런 판국에 북한의 반발을 걱정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미국에는 각을 세우고 북한은 두둔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을 비롯한 이 정권 핵심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이다.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한 것이라는 변명은 있을 수 없다. 핵무기는 핵무기로밖에 막을 수 없다. 결국 스스로 무장해제해 이 나라를 북한의 핵 인질로 만들겠다는 발상밖에 안 된다. '안보 색맹'이 아니라, 이 나라의 체제를 근저에서 허물겠다고 나선 것이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국가보안법 폐지, 무조건적 대북 지원에 이어 핵우산 제거 등 북한이 원하는 것만 이 정부는 추진해 왔다. 집권층이 국민의 안보 걱정은 팽개치고 북한을 위한 것에만 온 정신을 쏟으니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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