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핵, 현실적으로 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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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북한의 핵실험은 기술적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위험한 도발 행위다. 이번 핵실험으로 야기되는 모든 결과는 물론 북한의 책임이 돼야 한다는 데 어떠한 이견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면서 핵 문제가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일 뿐 다른 나라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유엔 헌장 7장에 따라 북한에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가 중국.러시아 등 북한과 가까운 나라들까지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만장일치로 채택된 사실은 북핵 문제가 북한과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가 됐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핵 문제의 본질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 등 냉전 구조 해체와 연결돼 있다. 한.소, 한.중 수교로 남북의 외교적.경제적 격차가 더욱 확대됨으로써 동북아의 국제정세가 북한에 극히 불리해진 국제정치 구조 속에서 북한이 극도의 안보 위기감을 느껴 '핵무장'을 선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작금의 국제정세 또한 북한에 안보 위협이 더욱 가중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안보 위협의 핵심에는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간 내 북핵의 전면 폐기라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는 북핵 문제의 안정적인 관리가 보다 현실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마당에 남북 관계의 축소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남북 간 대화 채널의 폐쇄나 군사 충돌 소지가 있는 대책은 안정적 관리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당분간 북핵 문제 전반을 의연한 자세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당면한 과제는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의 확고한 핵우산 제공 공약을 재확인받고, 북한의 비대칭적 위협에 대한 안전책을 시급히 강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핵 무장 주장은 동북아의 핵 도미노를 유발함으로써 한.미 동맹을 와해시키는 것이어서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없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북.중 동맹이 마찰음을 빚고 있는 현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촉구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이 무조건 6자회담에 복귀토록 해 회담 과정을 재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6자회담은 문제 해결은 물론 상황의 안정적 관리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재개된 6자회담은 북핵 폐기를 규정한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여야 한다. 북한의 이른바 핵 군축 회담을 위한 장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

이번에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배경에는 그가 분단국의 외교수장이라는 핸디캡을 오히려 기회로 승화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위기는 관계국의 비전과 행동 여하에 따라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국제적 평화구조를 창출하는 기회로 바뀔 수도 있다. 유엔과 반기문 차기 사무총장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국제정치 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진행되더라도 핵 제거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를 든 관계국들이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동북아 국제 체계가 유럽연합(EU)이 보여준 바와 같이 공동선 단계로 진화할 수도, 시기와 대립의 새로운 냉전 구조로 후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태익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전 주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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