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기고문

'불확실성 시대'의 한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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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북한의 핵실험으로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의 시대'가 열렸다. 핵실험 직후 큰 혼란에 빠졌던 금융시장은 다행스럽게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새로운 사태가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이 때문에 경제 주체들은 저마다 '북핵 위험관리'에 나서고 있다. 가계와 기업은 앞으로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 둔화에 대비하여 씀씀이와 투자전략을 새로 짜느라 분주하다.

정부도 급속한 경기 둔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기조의 변경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동안 재정 확대 등 사실상의 경기부양책을 쓰면서도 '인위적 경기부양은 없다'고 강변하던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피력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의 변화는 북핵 위기로 내수가 위축되고 성장잠재력마저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하다. 경제가 외부적 충격으로 휘청거릴 때야말로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부양책이 성과를 거두려면 몇 가지 유의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경기부양책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 정책이 될 우려가 있다. 대선을 앞둔 정부는 북핵 위기의 경제적 비용을 통화와 재정의 확대로 지불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특히 국회 동의가 필요한 재정 확대보다 손쉽게 통화를 늘리는 쪽으로 기울 공산이 크다.

북핵 문제는 국제적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다. 만일 국제적으로 대북정책의 변경을 요구받는데도 정부가 정치적 고려 때문에 포용정책을 고집할 경우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경제적 비용을 제대로 따지지 않으면 잘못된 결정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고스란히 국민이 떠맡게 된다. 물론 경기부양의 필요성도 그만큼 커진다. 아무리 북핵 위기 대처방안의 경제적 비용을 계산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미리 대안별 비용 계산을 해두는 것이 경기부양책의 수립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경기부양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한국은행 간의 정책 공조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행은 12일 콜금리를 동결하면서 "경기가 기대보다 조금 약하지만 수개월 전 예상한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북핵 위기로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위축돼야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재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방향이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정부가 내년 경제운용을 생각하는 반면, 한국은행은 북핵 위험이 가시화될 때까지 정책적 판단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도 경기가 본격적으로 위축되기에 앞서 금리정책을 선제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위기가 현재화하는 시점에 정부와 엇갈린 신호를 시장에 보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위기상황의 통화정책은 위험관리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 통화정책의 '마에스트로'라고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위험관리적 통화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각종 위험과 불확실성의 요인별로 위험에 적절히 대처하는 통화정책을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은도 이제는 주도면밀한 위험관리 정책을 수립하여 돌발적 위험상황에서도 금융시장의 불안을 조기에 진정시킬 수 있는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통화와 재정의 확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경기 활성화 대책이어야 한다.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이 비관적 기대를 갖게 되면 '백약이 무효'하다. 아무리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확대해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 주체들이 미래를 낙관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기업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투자를 유도하고, 반시장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정책들을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경제 활성화의 의지를 보여야 비로소 정부 정책의 약효가 듣는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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