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숨어 있던 한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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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뤄시허 9단 ● .백홍석 4단

별처럼 눈을 빛내며 판을 노려보는 백홍석 4단에게서 유목민 같은 강인한 기상이 품어져 나온다. 예선전부터 5연승을 거두며 험난한 여정을 헤쳐온 청년답게 온몸이 긴장으로 팽팽하다. 그 앞에 나지막하게 앉아 있는 뤄시허(羅洗河). 작은 키와 불룩한 배, 둥근 눈. 표정은 허술하기 그지없고 눈빛은 권태롭기까지 하다. 이 모습의 어딘가에 번개 같은 '칼'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문득 놀랍다.

장면 1(49~51)=백홍석 4단이 49로 하나 밀어놓고 51로 꽝 씌웠다. 일전을 마다하지 않는 기백이 충만한 한 수다. 그러나 백 A로 나와 끊으면 어찌 되는 것일까. 끊는 모습이 빈삼각의 우형이어서 결단이 쉽지 않다. 실패하면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면 판을 끝장낼 수 있다. 노타임으로 일관하던 뤄시허가 여기서 딱 멈추더니 생각에 잠긴다. 폭풍전야다.

참고도 1=백1, 3으로 끊으면 웬만한 수는 흑이 다 안 된다. 그러나 흑4 다음 6의 빈삼각으로 두는 수가 있다. A와 B의 돌파가 맞보기. 백이 안 된다. 이게 검토실의 견해였고 입맛을 다시던 뤄시허도 이 수 때문에 결전을 포기했다. 그러나 또 한 수가 숨어 있었다.

참고도 2=백1로 두는 수가 있었다. 이 수로 흑은 A, B가 모두 막히고 만다. 수 잘 보는 뤄시허가 왜 이 수를 놓쳤을까.

장면 2(52~61)=뤄시허는 무려 8분의 장고(?) 끝에 52로 물러섰고 흑은 재빠르게 53을 선수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흑은 61까지 호조를 타게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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