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우기(雨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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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기(雨期)'- 오장환(1916~51)

장판방엔 곰팡이가 목화송이 피듯 피어났고 이 방 주인은 막벌이꾼. 지게목바리도 훈김이 서리어올랐다. 방바닥도 눅진눅진하고 배창자도 눅진눅진하여 공복은 헌겁오래기처럼 뀌어져나오고 와그르르와그르르 숭얼거리어 뒷간 문턱을 드나들다 고이를 적셨다.



옛 사람의 시에는 젊은 시절 지어진 것임에도 핵심이 느껴진다. 그것은 시대와 생명을 동시에 관통하는 무엇이다. 우기의 시대였고 그에 따라 뒷간 문턱에서 고이를 적시며 살아야 했던 시대였다. 지난 시대 피었던 곰팡이가 아직 지워지지도 치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벽에 얼룩으로 남아 있다. 한반도의 지도처럼….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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