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조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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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꼭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하나에서 열까지 「지는 조건」만 두루 갖춘 것이 우리나라 축구팀이었다. 새삼 이탈리아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참패한 얘기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느분야,어느 조직이든 그렇게 하면 백전백패한다는 교훈을 찾자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은 MIT교원 30여명이 팀을 만들어 3대륙,2백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각국의 생산시스팀을 조사,비교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이 책에서 학자들은 미국의 기업들이 일본과 싸워 펑펑 지고 있는 이유를 다섯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 둘째 인적자원의 경시. 셋째 조직,인간간의 협조체제 결여. 넷째 정부,산업계의 불협화. 마지막으로 개발,생산의 기술 취약.
바로 이번 한국축구팀이 그랬다. 가령 실점이 두려워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하다가 패한 경우,그것은 전략으로는 최하의 것이었다. 세계에 진출할 야심이 있으면 마땅히 공격형 전략을 짜야 한다.
새로운 정보없이 전쟁에 임하는 것도 마치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기업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없다. 전략부재라는 말은 결국 정보가 없다는 말과 같다. 정보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인적자원 역시 우리는 우수한 선수들 속에서 더 우수한 선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선수들 가운데 덜 부족한 선수를 선발한다. 그나마 조직의 힘이라도 발휘하면 모르는데 그렇지도 못하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기업도 사람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기업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다. 스포츠팀에서 선수들이 시원치 않은 경우와 같다.
조직과 사람의 불협화는 더욱 큰 문제다. 바로 리더십의 경우다. 기업에서 리더십이 없는 간부가 앉아 있으면 그 조직은 죽은 조직과 같다. 선수들끼리,감독과 선수사이에 신뢰가 없고,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 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리가 없다.
그점에서 이번 한국축구팀은 스포츠의 세계만이 아니라,「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의 두꺼운 벽을 뚫고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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