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결의안도 못 낸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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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대북 결의안을 내놓는 데 끝내 실패했다. 한반도를 핵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북한을 초당적인 목소리로 규탄하자고 시작한 결의안 채택 논의였다. 국회는 11일 오후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본회의에서 이를 채택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의안은 통외통위에서조차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결의안 문구를 놓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정당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끝까지 맞선 이유는 이랬다. 우선 한나라당 측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자는 내용을 결의안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반대했다. 결의안에는 북한 정권에 대한 강력한 규탄 의사를 담는 것이 핵심이라는 주장이었다. 사실 양당 간사는 10일에도 이 문구의 삽입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었다.

그러나 결국 양당의 시각과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틀을 끌던 결의안 채택이 무산된 것이다.

여당으로서는 이들 사업이 남북교류의 상징이자 자랑하고픈 포용정책의 결실이다. 반면 한나라당이 보기에는 이들 사업이 핵 위기를 부른 '퍼주기 정책'의 대표적인 예다. 이러니 결의안을 통해 이들 사업의 중단을 촉구할지, 말지는 두 정당의 정체성과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정당은 자신들의 체면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바로 국민의 불안과 국제사회의 시각에 대한 고려다.

이번 핵 실험으로 한국 국민은 졸지에 머리 위에 핵을 지고 살게 됐다. '만약의 경우'를 상상하며, 불안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국회에는 이 불안을 잠재워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국회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여야가 힘을 모아 이번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그 의무를 다하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두 정당은 이 기회를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도 모양이 사나워졌다. 유엔은 이미 10일 대북 결의안 초안을 공개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견이 있다지만, 최종 결의안 채택까지도 멀지는 않았다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이런 가운데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은 각각 10일과 11일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한국 국회에서는 문안 합의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정작 북한의 핵실험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한국의 국회만 아무런 입장도 내지 못한 것이다.

결의안 채택이 어그러졌을 때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할지, 국제사회가 어떤 표정으로 한반도를 들여다볼지 생각해봤을까. 국익을 최대의 가치로 삼아야 할 순간에도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에 갇혀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핵 실험 발표가 있은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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