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다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본 적 있을 겁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들 틈만 나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폴더가 되었을까.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쓴 책 '피플 워칭'(까치)에 해답이 나옵니다. "물구나무 서기는 유아기 놀이의 가장 원초적 형태 중 하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른바 '현기증 놀이'를 언급하면서 연속 구르기, 회전 게임, 재주 넘기와 함께 물구나무 서기를 콕 집어 얘기하는 겁니다. 이 저명한 동물 행동 연구자 양반은 그런 놀이에 집착하는 까닭을 "신체 운동의 극단에서 느끼는 황홀경을 만끽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그럴듯하게 분석해 놓았습니다.
영화도 결국 물구나무 선 이미지들의 집합입니다. 카메라에 상이 맺히는 원리가 그렇잖습니까. 어쩌면 사람 앞에 물구나무 선 채로 마주 선 구미호는 우리 무의식의 필름 위에 거꾸로 맺힌 인간 자신의 형상과 다름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죽고 나 살자며 서로에게 악다구니로 덤벼드는 요즘 사람들이 나, 남의 간 빼먹으려 덤비는 구미호나 다를 게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무섭다고요? 잘됐네요. 간이 콩알만 해져서 적어도 구미호의 표적이 되지는 않을 테니.
김세윤 (영화칼럼니스트)
◆영화 칼럼니스트 김세윤(33)씨는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이자 영화잡지 '필름 2.0' 객원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헐크 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