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보물섬'같은 만화 잡지에 빠져 지내던 30대 독자들이라면 '요정 핑크'에서 그가 보여준 발랄함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김동화 만화의 맛은 향긋한 꽃향기와 쿰쿰한 흙냄새가 동시에 나는 토속적 정취에 있다. 그 정취는 이두호의 질박함이나 백성민의 강렬함이나 박흥용의 정갈함과는 또 다르다. 굳이 말하자면 잘록한 시골 처녀의 허리 같은 야들야들함이랄까.
'황토 빛 이야기' '기생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 양장본으로 묶여 나온 '못난이'(행복한 만화가게.그림) 역시 그때 그 시절의 정분(情分)을 듬뿍 담고 있다. "너무 예뻐도 못난이, 미워도 못난이, 그렇게 못난이는 우리 모두의 이름이었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에는 '못난이'라 부르고 불렸던,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원래 3권의 단편집 중 작가 스스로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11편을 모은 이 책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동네 누나에게 연심을 품고 설레는 소년('유년비가'), 행복한 표정으로 정혼한 남자의 복주머니를 만드는 언니를 바라보는 여동생('봉숭아'), 그리고 주막집 여인과 그 딸에게 동시에 연정을 느낀 장돌뱅이 아버지와 아들('꽃창포')이 제각각 보여주는 마음씀은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처녀.총각의 은근한 마음을 대사 한마디 없이 그려낸 '찔레꽃'은 또 어떤가.
특히 당당하고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얼굴도 못 보고 죽은 신랑과의 영혼 혼례식을 앞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아씨('호박등')나 돌아오지 않는 뱃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는 처녀('꽃배')의 씩씩한 모습은 그의 작품이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에 머물지 않게 만들고 있다.
정형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