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열며

한반도에 버섯구름을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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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백악관은 중국에 대북 특사 파견을 요청했다고 한다. 딱한 일이다. 왜 백악관은 평양에 직접 특사를 보내지 않는가. '북한과 양자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집하기 위해서인가. 북한의 10.3 핵실험 예고편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내용이 아니라 발표 그 자체다. 세상에 '핵실험을 하겠다'고 미리 예고하고 핵실험을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결국 북한의 핵실험 예고 발표는 워싱턴에 '특사를 보내달라'는 김정일의 초청장이다. 북한은 1차 핵위기 당시인 1993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코델 애커만 미 하원의원을 수행한 케네스 퀴노네스 당시 국무부 북한 데스크 손에 자신들이 마련한 핵협상 초안을 슬그머니 쥐어준 선례가 있다. 이 초안은 그 후 북.미 제네바합의의 밑그림이 됐다. 백악관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평양으로 보내야 한다. 아니면 정치인이나, 전직 주한대사,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등을 특사로 지명해 평양으로 보낼 수도 있다. CIA 막후 채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리비아 핵문제를 푼 것도 CIA-리비아 정보당국 간의 막후 채널이었다. 특사.막후 채널로 서로 체면을 세우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대북 제재나 유엔 안보리 결의는 대화 노력이 소진된 다음에 하는 것이 순리다. 또 그래야만 미국은 한국과 중국을 대북 제재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백악관은 마카오 은행에 동결된 단돈 2400만 달러 때문에 북한을 세계 아홉 번째 핵국가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또 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핵무장한 북한과 살 수 없다"는 힐 차관보의 말은 미국의 대북 제재와 선제공격 옵션을 함축하는 것이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북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대북 제재나 선제공격의 불똥이 남쪽으로 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할 경우 핵문제는 핵문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서울은 한.미.일 공동의 대북 전선에서 소외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지금 '핵실험 시 대북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이런 입장을 9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과 13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분명한 어조로 천명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1순위 대북 정책 목표가 '북핵 불용(不容)'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조치다.

또 유사시에 대비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차 북한에 상주하는 한국 측 요원을 조용히 철수시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조그만 사건이 자칫 초대형 충돌로 비화할 공산이 있다.

끝으로 청와대는 '말'을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 신문 1면 헤드라인에 '북한 핵실험 실시'라는 제목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민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북한의 핵보유가 일리 있다"는 노 대통령의 LA 발언(2004.11)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원기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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