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핵도박판 '타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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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교의 전매특허인'벼랑 끝 전술'이 악성 변종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북한이 한국을 포함해 외부세계에 가하는 위협의 내용과 강도가 한층 강해진 것은 물론 장기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관측통들은 '북한이 이번 핵실험 국면을 3~6개월 이상 끌며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장난을 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3~94년의 1차 핵위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벼랑 끝 전술은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 전술이었다. 북한의 핵협상 대표였던 강석주 외무성 부상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 영변 5MW 폐연료봉 인출 등의 강수를 던져 미국으로부터 50억 달러 상당의 경수로와 매년 중유 50만t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00년 등장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피그미''폭군''국민을 굶기는 독재자'라고 부르며 북한을 무시하자 평양의 수뇌부는 보다 강경한 벼랑 끝 카드를 던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지난해 2월 10일 핵 보유 선언을 한 데 이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어 10월 3일에는 "핵실험을 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과거에 비해 북한이 핵 도박에 건 '판돈'이 엄청나게 커지고 위험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에서 북한의 핵 게임이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핵실험이 북한의 진정한 목표라면 굳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예고할 필요가 없다. 과거 인도.파키스탄도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핵실험을 했다. 둘째, 10~11월에는 북한으로선 유심히 살펴봐야 할 국제적인 행사가 많다. 우선 중.일 정상회담이 8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데 이어 한.일 정상회담(서울.9일)과 한.중 정상회담(베이징.13일)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모두 북한의 핵실험 문제가 최우선 의제로 다뤄진다. 또 11월 7일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만일 북한이 중간선거 이전에 핵실험을 강행하면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에 유리하다. 셋째, 핵실험 카드는 북한의 최대.최후 카드다. 만일 김정일 위원장이 핵 보유국이라는 야망에 사로잡혀 '아무 생각 없이' 핵 방아쇠를 당길 경우 북한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브루스 클링거도 4일 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향후 3개월 내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40% 미만"이라고 전망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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