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위협에도 대북 지원 계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성명에도 불구하고 대북 수해 구호물자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4일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도 아닌 만큼 인도적 차원의 대북 수해복구 물자 지원을 끊는 것은 어렵다"며 "일단 예정된 자재.장비 지원은 계속하면서 사태 진전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날 인천항에서 시멘트 6400t을 실은 배가 남포항으로 출발했다. 시멘트는 10만t의 대북지원 물량 중 현재까지 2만1585t이 북측에 인도됐다.

그러나 지원 품목에 시멘트.철근 같은 건설 자재와 굴착기 등 중장비가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품목이 지하 핵실험을 위한 갱도 건설에 필수적인 품목이라 전용(轉用)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핵실험용 갱도는 지하 300m에서 1km에 이르는 폭 3m 정도의 규모인데, 방사능 낙진(落塵)을 막기 위해 갱도 속을 시멘트로 채워넣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50대의 굴착기와 페이로더 60대 등 중장비는 3일 북한에 모두 보냈다. 8t짜리 덤프트럭 100대도 이달 말까지 북송을 끝낸다. 여기에 철근 5000t까지 포함돼 있어 정부의 대북지원 강행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핵실험이 예고된 상태에서 전용의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시멘트 등을 계속 지원한다면 대북 정책에 국민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내심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8월 20일 대북 수해 지원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여론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핵실험 발표 이후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재.장비가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한 남측의 현장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