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환율 급락 … 수출 더 목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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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출 경쟁력의 가늠자 중 하나인 원-엔 환율이 2일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등 계속 떨어지고 있다. 엔화가 원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면 대일본 수출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 일본 상품의 가격 하락 효과로 제3국에서 일본 상품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는 수출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100엔당 800.90원을 기록하며 1997년 11월 17일 800.20원 이후 8년10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한때 800원선 아래에서 호가하기도 했으나,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가까스로 800원대를 지켰다.

◆ 추락하는 엔=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데 반해 국내 외환시장에선 달러 공급이 넘친다. 유난히 엔이 원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이유다. 지난 주말 미국의 경제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오면서 주춤하는 듯했던 달러 강세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추석을 앞두고 기업들이 원화자금을 마련하느라 달러를 대거 내다팔았다. 이 바람에 이날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달러당 1.70원 오른 947.90원으로 마감됐다. 원-달러 환율이 조금밖에 안 오르다보니 원-엔 환율이 떨어진 것이다.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구길모 차장은 "추석 자금 수요 등이 몰리면서 중공업.반도체 등 수출업체의 달러 공급이 많아 달러 가치 상승을 막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곧 원-엔 환율이 800원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원-엔 환율도 추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동원증권 전민규 연구위원은 "100엔당 780~800원선을 예상해야 할 때"라며 "일본 경제 회복세가 기대보다 시원스럽지 않은 데다 금리도 쉽게 올릴 형편이 아닌 반면 한국은 수출 등 9월 지표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중소 수출업체 타격 불가피=엔화 약세의 1차 피해자는 중소기업이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80% 이상이 심각한 환차손을 보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한국은행 김승훈 국제무역팀 과장은 "다른 지역보다 일본에 수출하는 중소기업이 많은 편"이라며 "엔저(円低) 현상이 지속되면 이들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수입은 그다지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20일까지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181억2900만 달러로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243억7600만달러)의 75%를 차지했다.

김창규.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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