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단군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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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는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좋은 충고자나 스승을 간절히 바란다. 인생을 앞서 산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받아 오늘의 고민을 해결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세부적 지침은 못 얻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정신이 우리의 힘이 돼주기를 원한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WWJD'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는 'What Would Jesus Do?(예수라면 어떻게 했겠는가?)'라는 문장의 약자다.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자신에게 먼저 물어볼 질문은 바로 이것이고 그 해답대로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만일 불교도라 하면 'WWBD(What Would Buddha Do?)'로, 유교 신자라면 'WWCD(What Would Confucius Do?)'라고 물어본다면 석가나 공자의 가르침에 따른 해답이 나올 것이다.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선조를 두었다면 나라가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그들이라면 이 경우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해 볼 만하다. 미국이 축복받은 나라라고 감히 말한 이유는 미국 국민에게는 건국 조상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아직도 생생하게 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도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면 'WWFD(What Would the Founders Do?, 건국 조상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모범적이고 훌륭한 건국 조상을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개천절 아침, 우리도 "우리의 건국 조상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물어볼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선조가 아쉽다. 나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에겐 반만년이라는 긴 역사가 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 같은 시절은 없었다. 지금 경제난.실업 등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역사상 이런 풍요와 자유를 누린 때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건국을 대한민국에서 출발시켜 보면 어떨까. 이 새 나라는 불과 60년밖에 안 된 젊은 나라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나라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백 년 뒤 우리 모두는 이 나라의 건국세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꿈과 신념과 가치가 후세들의 규범이 될 것이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들의 모범이 될 것이다. 이 어찌 무겁고 뿌듯하지 않은가.

우리는 인물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것은 그동안 대한민국 역사에 남길 인물들을 모두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건국 아버지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건국의 아버지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려면 결점보다는 장점을 드러내 기려야 한다. 이승만이 비록 독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을 존재케 한 인물이다. 우리는 그의 통찰력과 판단력 덕분에 적화를 면하고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언제나 이승만 선조에게 나라 존립의 방법을 물어보아야 한다. 박정희는 이 나라를 부강케 한 인물이다. 우리가 풍요한 나라를 지향한다면 박정희 선조에게 물어야 한다. 평생 민주 투사로 지내며 이 땅에서 군사 쿠데타를 몰아낸 인물은 김영삼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시대가 혹시 온다면 후손들은 김영삼에게 물어야 한다. 통일의 꿈을 일깨워준 인물은 김대중이다. 이렇듯 비록 전인격적으로 완벽한 조상은 없었지만 우리는 모자이크를 통해서라도 우리의 건국 조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기 4339년 개천절의 소감이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