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22. 도박장 청소부 <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일당은 10달러에 불과했다. 학비를 벌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식당일은 오후 5시면 끝났으니까 저녁시간에 일을 더 해야 했다. 도박장을 찾아다니며 밤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화장실 청소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일하고 하루 10달러를 받았다. 수세식이니 일이 힘들 것 같지는 않았다.

출근 첫날, 고향에 계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큰 뜻을 품고 유학 와서 화장실 청소부가 되다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화장실 청소는 어렵고 더러운 일이었다. 초저녁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자 술에 취한 사람들이 화장실로 몰려들어 저녁 내내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넓은 화장실 곳곳이 오물로 더러워졌고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울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런 일은 금세 끝나. 나에게는 꿈이 있잖아. 절망하지 마'. 며칠 지나자 그 일도 익숙해졌다. 기왕 하는 일 즐겁게 하기로 했다. 미소를 짓고 콧노래를 부르며 일했다. 동료 청소부들은 나를 '스마일'이라고 불렀다.

프랭크는 청소부 대장이었다. 대머리에 풍채가 좋고 교양도 있는 사내였다. 그는 내가 대학생이라는 걸 알고 관심을 보였다. 하루는 날 부르더니 "에드, 앞으로는 화장실 청소를 마치면 슬롯머신 구역도 청소하도록 해."

잘 봐준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더 맡기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곧 그의 뜻을 알게 됐다. 슬롯머신 주변의 쓰레기를 빗자루로 쓸어 담자 쓰레받기에 동전이 모이는 것이었다. 기계에서 쏟아진 동전이 바닥에 떨어져도 취객들은 일일이 줍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많을 땐 하루에 10달러나 됐다. 일당과 비슷했다.

프랭크의 호의 덕분에 학비를 버는 기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타오 호수의 도박장에서 8개월을 보냈다. 1년 학비를 버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김희중 갤러리]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풍물 사진이 아니다. 1950년대 중반, 전쟁은 끝났지만 우리의 삶은 헐벗은 산 만큼이나 궁핍했다. 사람들은 장작 한 짐, 닭 몇 마리를 지게에 얹고 장터로 향했다. 갓을 쓴 노인이 지게에 새끼를 가득 싣고 장터로 가고 있다. 새끼 위에 담뱃대가 점잖게 꽂혀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