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승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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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에는 두개의 인상적인 전쟁기념비가 있다.
하나는 워싱턴시 교외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세워져 있는 동상. 철모를 쓰고 전투복을 입은 전장의 용사 5명이 산마루에 성조기를 세우고 있는 극적인 장면이다.
그것은 1945년 2월 태평양상의 고도 이오지마(유황도) 혈전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바로 그 전투가 절정에 이르렀던 2월23일 AP통신사의 카메라 맨 조로젠덜기자가 스리바치산정에서 그 순간을 포착했었다.
또 하나의 전쟁기념비는 역시 워싱턴 백악관 건너편 링컨기념관옆 잔디밭에 세워진 베트남전 참전기념비. 한쪽이 60m씩 되는 두개의 검은 화강암을 V자형으로 세워놓은 이 기념비엔 전사자와 행방불명자 5만7천7백9명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러나 이 비가 건립되자 사회의 비판과 참전용사들의 반발이 일었다. 설계속엔 악전고투하는 병사들의 모습도,성조기도 없었다. 게다가 검은 화강암에 죽은 자의 이름만 조각한 것은 슬픔과 치욕의 상징이 아니냐는 것이다.
연방미술위는 뒤늦게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토론하는 자리엔 말보다 눈물이 더 많았다는 얘기도 남겼다. 결국 3명의 총을 든 병사의 모습과 성조기 게양대가 있는 기념비를 옆에 별도로 세워야 했다.
바로 1일 워싱턴시 쇼램호텔에선 미국의 한국동란참전기념비 건립기금 모금행사가 있었다. 부시대통령을 비롯해 참전용사였던 상하양원의원 46명과 함께 1천명의 각계인사들이 모여 1백만달러를 모금했다.
총건립비 1천5백만달러. 순수한 민간 모금으로 오는 93년 7월 완공예정. 링컨기념관앞에 세워질 동상은 38명의 육해공 병사들이 행진하는 모습.
『… 한국전쟁에서의 우리의 자유수호는 오늘날 우리가 세계 도처에서 보고있는 민주주의의 행진을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 부시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잊혀진 승리」의 한국동란을 두고 이렇게 연설했다.
자유세계와 공산주의와의 전쟁이었던 한국동란은 단순히 미국의 승리아닌 자유의 승리이며 민주주의와 번영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참전기념비는 그 점에서도 깊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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