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지기만 하는 우편행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벌써 여러 해가 지난 일이다.
나는 이란-이라크전이 한창인 무렵의 그 황량한 사막에 있었다. 어느 곳을 보나 전쟁터임을 쉽게 느끼게 하는 환경이었다.
전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우리는 중대 병력의 현지군인들이 삼엄한 경호를 하는 가운데 공사를 계속했고 이동할때는 중무장한 탱크를 앞뒤에 세워야 했다. 급기야 바그다드 공항이 공격을 받아 폐쇄되고 우리에게도 대피령이 내려졌다. 계속되는 통금, 비상대기 상황속에 신문·방송전파도 닿지 않아 고국 소식은 끊긴지 오래고 이따금 도착하는 신입 근로자를 통해 얻어 듣던 정보마저 단절돼버렸다.
그 와중에서 우리에게 생명선과 같은 유일한 위안거리는 바로 고국에서 온 편지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송출회사에 차곡차곡 모아졌다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현지국 공항 검사대를 어느 직원의 집속에 숨겨져 들어와 손에 쥐어지던 한통의 편지, 그 편지 내용은 한결같이 어서 중도 귀국하라는 애절한 독촉뿐이었는데 미련하기 짝이 없는 난 『목표했던 기간까지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노라』는 고집을 답장으로 보내곤 했다.
오랜 시간 뒤, 평화를 보지 못하고 결국 나도 귀국집을 챙기게 되었는데 현지에 남은 정든 동료들은 피보다 진한 사연을 꼭꼭 채워 쓴 편지를 한아름 선물대신 맡기는 것이었다.
공항 보안요원들이 눈치차지 못하도록 몇 겹 포장해 짐 속에 챙긴 편지들. 내가 그리던 고국땅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편지에 단 일초라도 빨리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주는 일이었다. 사연 하나하나에 담긴 그 많은 언어들이 어서 수취인들 가슴에 닿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이제 그런 편지를 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 지금 받는 이가 기쁨의 눈물을 흘릴 그런 사연들을 많이 전할 수 있다면 그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무리 날라 줘도 고마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광고물 따위가 이토록 많은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사회 모든 분야가 하루하루 발전과 진보를 거듭하는 현실 속에서 유독 집배원들의 근무여건이나 업무량이 수십년전의 수준에서 답보를 거듭하고 개선되기는 커녕 도리어 점점 열악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동물 사회와 다른 것은 늘 희망과 기대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다시 돌아온 체신의 날을 맞아 올해는 뭔가 전과 다른 체신행정을 기대해본다.

<인천우체국 집배계 집배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