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코드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취임 초부터 독특했다. '흙 속의 진주를 찾으라'는 주문과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의 '촌닭' 정찬용 인사수석의 등장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정 수석에겐 "귀하게 쓰이고 다음 정부에서 일을 해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을 찾아 달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이때만 해도 노 대통령은 세상의 평판을 중시했다. 청와대에 몸담았던 열린우리당 한 중진 의원의 회고.

"노 대통령이 청와대의 요직에 꼭 시키고 싶은 인사가 있었어요. 인사 검증 결과를 받아본 대통령은 '그 양반, 왜 그리 평판이 안 좋습니까'라며 안타까워했죠. 결국 기용하지 않았어요. 주변의 평이 좋지 않은 점이 끝내 걸렸던 모양이에요."

노 대통령은 고건 국무총리 기용에 반대한 386참모들을 "나에겐 행정에 대해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보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몽돌과 받침대'론이다.

여론에도 귀 기울였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이진씨는 "김우식 비서실장은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할 정도의 직언을 잘했다. 한번은 택시기사들의 쌍욕까지 그대로 전하자 노 대통령이 역정을 냈다. 김 실장이 '저를 부른 이유가 이런 것 때문 아닙니까' 하자 노 대통령은 크게 웃은 뒤 계속 김 실장의 '험담'을 들었다"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중에서)고 적고 있다.

임기 3년6개월이 지난 지금 노 대통령은 '코드 인사' 시비로 시달리고 있다. 여론이나 세인의 평판엔 아랑곳하지 않고 '코드'에 맞는 사람들을 요직에 앉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능력이 똑같은 사람이면 대통령의 정책을 잘 이해하고 착실하게 이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써야 한다. 그것은 책임정치의 당연한 원칙"이라고 항변한다.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은 (개혁을) 열심히 해 주지 않는다"는 불평도 했다.

이런 인식의 밑바탕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나랏일을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없다'는. 또 '길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딴죽 걸지 말고 따라오라'는 생각도 엿보인다.

이는 코드 인사의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했거나 외면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비슷한 성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채워진 조직은 건강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모두 한 방향으로만 향하기 때문이다. 마치 거인국에서 정상인이 배척받고 소인국에서 보통 사람들이 이방인 취급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통령의 신임에 의해 '자리'가 좌우되는 사람은 맡은 분야에서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기보다 대통령의 지시나 관심사를 챙기는 데 급급하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사람들일수록 정도를 벗어난 무리한 언행과 튀는 발언으로 잦은 물의를 일으키는 까닭이다.

사행성 오락 게임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나라가 들끓고 있다. 노 대통령은 "도둑 맞으려니 개도 안 짖더라…"며 뒤늦은 사과를 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비리와 유착, 외압 여부 등 전모가 밝혀지겠지만 몇 사람 구속하고 사표 받는 선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근원적 치유와 처방은 그게 아니다. 주택가 골목까지 도박의 검은 그림자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을 때 왜 경보 시스템이 발동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혹시 경보가 울렸는데도 소홀했거나 모른 척 넘어간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온통 '짖지 않는 개'들로 둘러싸여 있다면 외환위기라는 쓰나미(지진해일)가 몰려오고 있는데도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한심한 보고를 받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정민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