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즉위 25주년 맞은 요한 바오로 2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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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78년 10월 16일 오후 6시, 바티칸의 성바오로 성당 발코니에 펠리치 추기경이 나타났다. 전 세계의 로마 가톨릭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선거에 들어간 지 이틀째, 드디어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기뻐하십시오. 새 교황이 탄생했습니다. 그 분은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입니다."

공산국가였던 폴란드에서 크라코프 대주교를 맡고 있던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은 이탈리아인이 아닌 인물로는 네덜란드 출신 하드리아노 6세(재위 1522~23) 이후 4백55년 만에, 슬라브족으론 처음으로 가톨릭의 수장이 됐다. 2백64대째 교황이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바오로 2세가 16일로 은경축(銀慶祝), 즉 즉위 25주년을 맞았다. 전 세계 10억 가톨릭 교도가 이를 축하했다. 바티칸은 25년 전 교황선거 결과를 발표한 오후 6시에 맞춰 성베드로 광장에서 축하 미사를 열었었다. 성베드로 광장은 25년 전의 그날처럼 축하객들로 가득 찼다. 올해 83세인 교황은 파킨슨병.관절염 등 여러 질환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특유의 온화한 표정과 비교적 힘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맞았다.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 등 전 세계의 추기경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교황을 낳은 폴란드에선 전국에 축하의 종소리가 울렸다. 타종은 바티칸의 내실에서 교황 선출이 확정된 시간인 오후 5시15분에 맞춰 실시됐다. 서울 명동성당에서도 16일 오후 6시 교황 즉위 25주년 미사가 열렸다.

즉위 당시 58세였던 요한 바오로 2세는 '행동하는 교황'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25년 동안 1백2회에 걸쳐 1백31개 나라를 찾아 화해와 평화를 외쳤다. 방문한 도시만도 6백여곳에 이르고 연설 횟수는 2천4백회가 넘는다.

비행기를 탄 거리는 지구를 29바퀴를 돈 것과 맞먹는 1백12만㎞나 된다. 한국과 인연도 각별해 84년 5월 방한해 한국교회 2백주년 기념대회를 열고 1백3위의 성인을 시성했다. 89년에는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를 주재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즉위 초 7억5천7백만명이었던 전 세계 가톨릭 신도 수는 2001년 10억6천만명으로 40% 늘었다.

교황은 채석장과 화학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나치 치하 때 비밀 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로마에 유학해 윤리신학을 공부한 뒤 귀국, 38세에 주교가 됐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자기 반성에 앞장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의 유대인 박해부터 중세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당시의 잔혹한 범죄행위까지 가톨릭 교회가 2천년 동안 저지른 과오를 사과했다. 다른 교회나 종교와의 화해에도 적극적이었다. 북유럽을 순방하며 루터파와 화해했고, 동유럽을 방문했을 땐 동방정교회 지도자들과 손을 맞잡았다.

"참된 종교에는 편견과 적대심이 들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가 95년 바티칸에서 영국 성공회 지도자들을 만났을 때 한 이 말은 교황의 사상과 행동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로 통한다.

대외적으로는 이처럼 화합을 강조했던 바오로 2세는 하지만 교회 내부에선 보수적이었다. 여성을 사제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나 피임과 낙태를 허용하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절대불가'입장을 고수해왔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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