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전쟁에 지쳤다 돈 모으면 이 나라 떠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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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로 변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남부에서 주민 두 명이 간단한 짐만 챙겨들고 길을 떠나고 있다. [베이루트 AFP=연합뉴스]

서정민 특파원

28일 날이 밝으면서 둘러본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는 아직 이스라엘의 큰 공격을 받지 않아서인지 인파로 복작거렸다. 평소처럼 교통도 혼잡스러웠다. 하지만 시내에서 남쪽으로 내려가자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시아파 이슬람교도가 몰려 사는 서민 주택가인 하라트 후라이 지역은 그야말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주택가 복판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벽돌 더미로 변한 건물이 수십 채나 됐다. 인적도 뜸했다. 이스라엘이 자국 병사를 납치해간 헤즈볼라가 시아파 출신이라는 이유를 들어 레바논 내 시아파 밀집 지역을 대규모로 파괴한 현장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인프라 파괴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시아파 지역으로 이어지는 고가도로는 정밀폭격으로 가운데에 구멍이 커다랗게 뚫려 하늘이 그대로 보였다. 시내에서 공항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교량도 상당 부분 파괴돼 있었다. 공습으로 파괴된 활주로를 확인하기 위해 베이루트 국제공항으로 향했으나 군인이 출입을 막아 접근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도 절망하고 있다. 베이루트 시내 르네 무아와드 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한 상가 거리에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땅바닥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씻지 못했는지 얼굴에는 때얼룩이 보였지만 부릅 뜬 눈에는 강한 빛이 있었다. 67살의 빌랄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노인은 "더이상 희망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폭격으로 집을 잃어 길가에 자리를 깔고 앉았지만 일자리를 구하고 있을 뿐 구걸을 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한 두달 일해 돈을 모으면 이 지긋지긋한 나라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공습으로 하나 뿐인 딸을 잃었다. 부인과는 수년 전 사별했고, 아들 둘은 1975~90년 내전기간 중 모두 죽었다. 14일 다른 난민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베이루트까지 왔다. 오는 도중에 도로가 폭격당하면서 작은 골목길을 따라 우회하기도 했다. 80km의 거리였지만 차를 탔다거 걷기도 하고 해서 이틀만에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친척이 있는 난민들은 그들의 집으로 향했지만,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살아 있었다면 결혼해 가정을 꾸렸을 아들들은 모두 죽었다.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지역에 먼 친척이 있지만 그는 가뜩이나 집중 폭격으로 삶 자체가 어려울 그들을 찾아가기 싫었다. 12일 레바논 사태가 발생한 이후 베이루트 남부 시아파 지역은 집중공격을 받았다. 발전소도 폭격을 맞아 전기공급도 안되는 곳이다. 결국 물어물어 방학기간 중 난민을 수용하는 르네 무아와드 초등학교에 17일 들어왔다. 하지만 학교서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가르치던 학교에 틀여박혀 먹여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고 빌랄은 말했다. 그는 7년전 은퇴할 때까지 레바논 남부 지중해안의 도시 수르에 있는 시아파 초등학교의 선생이었다.

"참고 또 참고 살아보려 했지만… 이제 떠나야겠다"고 빌랄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길 건너편에 있는 한 낡은 건물 벽을 가르켰다. 수 백개의 총탄자국이 남아있었다. 15년간의 지난 내전동안 남은 전흔이었다. 아직도 베이루트에는 지난 내전의 상처를 안은 이같은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폭음과 교전소리… 더이상 파괴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빌랄은 분노했다.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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