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엄마 아빠의 '안습'한 인생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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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푸른 자전거

실라 컨웨이 엮음, 정음, 256쪽, 9500원

엄마는 1951년생이다. 전쟁의 폐허가 가득했던 동네에서 태어났다. 살림은 가난했다. 어린 시절 공장에서 시계를 조립했다. 어렵게 상업학교에 들어갔다. 공책 살 돈도 없어 웬만한 것은 전부 외웠다. 머리가 노트가 됐다. 어떤 부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렇게 외우기를 반복했으나 선생님에게 자주 혼났다. 노트에 적어내는 숙제를 하지 못했기 때문. 그런 엄마가 지금 말씀하신다. "후회 없이 살아라. 나중에 후회하면 아무 소용없어."

아들은 대학 4학년(2000년 기준)이다. 학교 영어 작문시간에 '파란 눈'의 서양교수가 특별한 숙제를 냈다. "부모님의 지난 삶을 인터뷰하고, 영어로 옮겨오세요." 숙제를 하며 아들은 깨달았다. 엄마가 내 학업에 왜 그토록 열정적이셨는지…. 엄마와 아빠의 연애 이야기도, 엄마의 고된 시집살이도 처음 들었다.

서양교수(엮은이)는 아일랜드 출신이다. 현재 한국외대 영문과에 재직 중이다. 한국이라곤 전쟁과 분단, 그리고 현대자동차밖에 몰랐던 그는 96년 한국에 와서 큰 충격을 받았다. 고층빌딩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지하철과 거리를 누비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과거를 모르고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현실에 놀랐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구전 역사학자'를 주문했다. 부모님의 일생을 공부해오라고. 그 과제물을 골라 엮은 게 이 책이다. 가난.전쟁.성장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인의 자화상이 담겼다. 민초(民草)로 읽는 한국 현대사다. 구세대와 신세대를 잇는 멋진 다리이기도 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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