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문 철회 … 회장단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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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의 서명을 도용해 노동조합의 산별 전환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냈다 물의를 빚었던 한국산업노동학회(회장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가 잘못을 인정하고 호소문을 철회했다. <본지 6월 17일자 8면> 그러나 이름을 도용당한 일부 학자는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있어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산업노동학회는 이종구 회장 명의로 '산별노조 전환 호소문에 대한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원의 서명 철회와 사과'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20일 학회 소속 학자들에게 발송했다.

이 회장은 사과문에서 '호소문 작성과 서명을 주관한 학회 책임자로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6월 10일 개최된 산업노동학회 춘계 학술대회가 끝난 뒤 열린 총회에서 호소문의 내용에 관해 토론하고 발표키로 결의했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이를 회원에게 공지하고 회원의 적극적 참여의사를 재확인하는 절차 없이 개인서명의 호소문을 발표하는 미숙함을 범했다"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들의 서명을 도용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심각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며 "호소문의 서명 참여자 중 학회 회원의 서명 철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산업노동학회는 15일 "노사 관계 선진화를 명분으로 노조를 크게 약화시킬 로드맵이 추진되고 있으며, 나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산별노조는 노동자 모두를 하나의 조직으로 포괄하고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내용의 '진보학계에서 노동조합원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호소문에 서명한 것으로 돼 있는 상당수 학자가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이 호소문이 발표되자 민주노총은 홈페이지에 내용을 올려 산별노조 전환 투표를 독려했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 사과문에서 "저희의 불찰로 노동조합원 여러분께 혼란을 초래한 것을 사죄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저희 학회에 기대와 애정을 보내주신 많은 분을 실망시킨 책임을 통감하며 학회 회장단은 사직 의사를 밝힌다"고 덧붙였다.

이름을 도용당한 인하대 김대환(전 노동부 장관) 교수는 "아니면 말고 식의 사과"라며 "학자의 양심을 손상시킨 만큼 국민 앞에 공개적이고 당당하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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