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동북공정 대처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외압에 굴하지 않는 서릿발 비평을 흔히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원래 의미는 그게 아니다. 한자의 함축성을 이용해 에둘러 기록하는 서술방식을 말한다. 공자가 당시 현대사였던 '춘추'를 집필하면서 제 임금인 노나라 왕이나 주나라 천자의 잘못을 대놓고 쓰기 뭐해 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린 것이 춘추필법인 것이다.

춘추필법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중국은 높이고 외국은 깎아내리며(尊華攘夷)' '중국사는 상세히, 외국사는 간단히 기술하고(詳內略外)' '중국을 위해 수치를 숨긴다(爲國諱恥)'는 게 그것이다. 원칙을 벗어났다간 자칫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에 따르면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것도 한나라가 고조선에 패한 사실을 기록했다가 한 무제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이러니 역사가 제대로 기록될 리 없다. 중국의 계몽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역사연구법'에서 스스로 통탄한다.

"중국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목적을 위한 꼴 무더기 노릇을 할 뿐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억지 위조해 사가의 신용이 땅에 떨어졌다. 이 악습은 공자로부터 나와 2000년 동안의 중국 역사가 그 악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우리 사가들이 앞다퉈 춘추필법의 장단에 춤을 췄다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량치차오와 같은 심정으로, 실상을 알려는 노력 대신 중국 사서를 베끼기만 한 '옹졸한 선비'들의 행위를 개탄한다. "(고구려의)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漢四郡)을 죄다 압록강 이남에 몰아 넣어서 (…)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200년도 더 전에 앞으로 후손을 열 받게 할 중국의 동북공정을 미리 내다본 듯한 말이다. 같은 시기 그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를 일깨워준 실학자 순암 안정복의 혜안은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근본을 따져 논한다면 요동 땅을 반으로 나누어 오라(烏喇.지린성의 옛 이름) 이남은 모두 우리 땅이었다. (…) 오늘날 군사력은 기자와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고 목조와 익조께서 살던 곳까지 넓히는 것은 논할 수 없다. 옛일을 많이 알아 국경을 밝혀 자강의 도로 삼아야 할 뿐이다. (…) 예부터 천하의 전란은 늘 동북에 있어 왔다. 우리나라가 화를 입은 경위는 앞의 사례에 환하게 드러나니 이를 살펴 국경을 방어하는 계책을 국정을 담당하는 인사들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훈범 week&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