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문화cafe] 심장 꿰뚫는 그 남자의 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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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나훈아의 '갈무리'가 나올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트로트에 머물지 않았다. 괴이한 현대음악이 귀를 시끄럽게 때리더니 이내 홍대 클럽에서나 들을 것 같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휘몰아쳤고, 스포츠 댄스 자이브도 곁들여졌다. 가리지 않는 음악처럼 춤도, 안무도 자유롭게 떠돌았다. 때론 심각하게, 때론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게.

'아큐'(阿Q)는 종 잡을 수 없는 춤사위로 가득하다.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안무가로 자리 잡은 홍승엽(44)의 2년 만의 신작. 2004년 말 '올해의 예술상' 우수상을 받고도 "비디오로 심사를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며 수상 거부를 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중국 작가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모티브만 따왔단다. 공교롭게도 작품에 흐르는 주제는 '어리석음'이다. "수상 파문이 혹시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더니 그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작품은 수상 이전에 구상한 것이다. 내가 영향 받을 게 무엇이 있는가. 그들은 달라진 것 같지만…."(실제로 2004년 이후 올해의 예술상에서 비디오 심사는 사라졌다)

작품엔 세 가지 주요 소품이 등장한다. 꽃.칼.고깔이다. 꽃은 치명적인 유혹을, 칼은 직접적이고 강렬한 충격을, 또한 고깔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우둔함을 상징한다. 이런 은유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안무가 빛을 내는 부분은 각각의 주제를 연결하는 매끄러움이다. "무거운 주제를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만큼 숨막히는 게 있는가"라며 그는 짐짓 시치미를 뚝 뗀 채 무대에서 폴짝폴짝 유희한다. 심각할 것 같은 순간, 이내 장난으로 넘어가다 너무 가볍다 싶으면 다시 제자리에서 중심을 잡는 정교함. 이 때문에 그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닐까.

"세계 초일류 무용단에는 부족하지만, 일류급과 맞짱 뜨면 질 것 같지 않다"는 그의 자신감이 결코 실언처럼 들리지 않을 무대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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