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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基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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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연못 속 개구리의 이동 수단은? 다리 물갈퀴다. 물 위를 오갈 땐 수련(睡蓮)을 이용한다. 둥근 잎이 무더기로 물 위에 떠 있는 물풀이다. 개구리는 뒷다리의 탄력으로 껑충껑충 잎을 옮겨 다닌다. 수련은 발판이자 휴식처다.

미국은 해외기지에 수련(lily pad)이란 이름을 붙였다. 2003년부터 해외기지 재배치를 본격화하면서다. 개구리를 철모 쓴 미군, 연못을 세계로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항구적(恒久的)이고 중무장한 냉전형 기지를 기본 시설만 갖춘 곳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새 기지가 도약대.정거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예외는 있다. 미국 본토와 괌, 일본.영국의 기지다. 이곳은 전력(戰力)을 투사(投射)하는 거점(hub)이다. 나머지는 수련 잎 기지다. 지상군은 장기 주둔군이 아닌 순환 배치군이 된다. 동시에 모든 기지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인다. 수련 잎이 한 뿌리에서 여러 개 나는 것처럼.

펜타곤이 모델로 삼는 수련 잎 기지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공군기지. 2001년 임대한 옛 소련의 군용비행장이다. 이곳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위한 요충이었다. 전쟁에 투입된 전투기의 주유(注油), 보급.정찰은 이 기지를 통해 이뤄졌다. 배치 인력은 1100여 명. 시설도 소규모다. 이 기지는 지금 자원의 각축장인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교두보다. 오죽했으면 러시아가 이곳에서 30km 떨어진 칸트에 공군기지를 만들어 견제에 나섰을까.

냉전 붕괴 후 기지 확산은 미 군사정책의 핵이다. 2003년 현재 해외기지는 702개. 130개국에 20만5000여 명이 배치돼 있다. 새 기지는 카리브해.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남아시아로 몰리고 있다. '불안정의 호(弧)'로 불리는 곳이다. 테러의 진앙지이자 자원의 보고(寶庫)다. 미군 기지는 테러를 막고, 자원과 파이프라인을 지킨다. 네오콘 입장에서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전초기지다. 유럽에선 '낡은 유럽(서유럽)'을 떠나 '새 유럽(동유럽)'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문제가 시끄럽다. 수련 잎을 떠올리면 미 지상군이 의정부.동두천.용산을 떠나 평택으로 가려는 이유가 보인다. 그곳엔 항구가 있고, 바로 옆에 오산 비행장이 있다. '행동의 자유'는 수련 잎 기지의 목표다. 더 가면 중국이 나타난다.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의 눈으로 미국의 기지 재배치를 보면 어떻게 될까. 또 다른 수단에 의한 외치(外治)의 연장(延長)이 아닐까.

정치부문 오영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