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9일만이군 … 2조원어치 쏟아낸 뒤 '사자' 돌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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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9일 외국인이 이달 들어 처음 순매수로 돌아섰다. 지난달 25일 이후 매도 행진을 펼친지 9거래일 만이다. 순매수 규모도 1400여억원으로 비교적 컸다.

이에 따라 '증시의 큰손'인 외국인들이 다시 적극 사자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희망섞인 관측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증시 전문가들은 신중하다. "과거 '바이 코리아'같은 외국인의 공격적인 매수 기대감은 버리는 게 좋다"고 말한다.

1998년 증시 완전 개방 이후 웬만한 우량주는 살 만큼 사 보유 비중이 턱까지 찼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가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외국인 선호 종목들은 대부분 최근 1~2년새 적잖게 뛰었다. 한편에선 외국인의 움직임에 더이상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화증권 이상준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증시에 유동성이 넘쳐나는데다 지난해 이후 국내 증시도 기관투자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살만큼 샀나=지난달 25일부터 이달 8일까지 외국인은 대만에서만 2조5000억원,인도에서도 8100억원 가량 주식을 사들였지만 유독 국내 증시에선 2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동양종금증권 허재완 연구위원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인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이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헝가리.핀란드 등과 더불어 한국은 외국인 비중이 가장 높은 증시 중 열손가락 안에 꼽힌다. 보유 비중이 44%까지 육박했던 2004년 7월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40%대를 웃돈다. 최근 3년간 외국인이 적극 매수한 대만 증시의 외국인 점유율은 현재 31%에 그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보유 종목의 99%가 시가총액 100위 안의 대형주에 집중돼 삼성전자.국민은행 등 국내 대표 종목의 외국인 비중은 60~70%를 웃돈다.

2000년대 들어 한동안 국내 증시는 외국인만 쳐다보는 '천수답 증시'였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외국인이 증시를 쥐락펴락해왔다. 이들이 사면 지수가 급등하고, 팔면 떨어졌다. 기관투자자와 개인들은 외국인 따라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런 패턴은 지난해 이후 확 바뀌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국관련 해외 뮤추얼펀드엔 사상 최대 규모인 101억달러가 몰렸지만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3조원 가까이 순매도했다"며 "주식형 펀드를 내세운 기관이 매수 주체로 떠오르면서 외국인의 증시 지배력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셀 코리아'는 없을 것=최근 순매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의 '사서 묻어두는(Buy &Hold)' 전략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게 중론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중국.인도 등 다른 신흥 시장의 기업들보다는 월등히 경쟁력이 있는데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 돼있다는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은 "국제 경기 위축이나 글로벌 유동성 감소 같은 '큰 위기'가 없는한 투자종목 교체 이상의 대규모 외국인 매도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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