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외교의 새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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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이 헝가리와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한 합의는 한국외교에 새 지평을 열어주는 동시에 북한에도 서방세계로 진출할 길을 열어주는 획기적 사건이다. 이 합의는 한국으로 하여금 동구권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할수 있게 해주었다는 경제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기여하게 되리라는 정치적 의미 때문에 우리는 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한반도 분단을 극복할 원동력이 궁극적으로 민족 내부에서 나와야 된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시간을 요하는 이 과정의 순탄한 진행을 위해서는 남북한이 다같이 외부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념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 도움이 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헝가리와의 관계 접근은 그런 뜻에서 하나의 시발점이다. 중국과 소련은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의식해서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형식보다는 실질에 비중을 둔 대한접근을 추진하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북한과의 유대를 덜 의식해도 되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도 헝가리의 예를 따라 한국에 접근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공산국가들 사이의 추세는 이제 북한으로서도 되돌릴수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중소를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서울 올림픽 참가와 헝가리의 결단이 그 증거인 것이다.
북한의 공식 입장은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 동맹국과 국교를 맺는 것은 분단상대를 영구화하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이번 헝가리와의 합의에 대한 평양의 첫 반응도 그런 종전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있다.
그러나 그런 공식입장은 북한 스스로의 행동에 의해 가끔 상반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북한은 간헐적이기는 해도 미국과 대화를 트려는 노력을 해왔고, 84년에는 서방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합영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서방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성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폐쇄적 사회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북한이 겪고 있는 낙후성은 중소및 다른 공산국가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 공산국가들이 대서방 낙후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서방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려하고 있는 때에 북한 혼자 고립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낙후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외에 별 이득이 없을 것이다.
이와같은 절박한 상황 인식은 북한에서도 일부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바람은 평양에서도 번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와같은 북한내의 기류가 이번 한·헝가리간의 합의를 계기로 전면으로 나와 우선 국제관계에 있어서만이라도 탈이념·공존의 방향으로 순응하게 되기를 우리는 충심으로 바란다.
통일 의 가능성은 남북한간 격차가 벌어지는것 보다는 좁혀져야만 더 커진다는 시각에서 북한의 대서방관계 개선은 정체의 자유화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이룰 수 있는 길을 열고, 통일 의 날을 앞당길수 있을 것이다.
헝가리와의 관계개선으로 마련된 계기가 이런 시각으로 받아 들여져 남북관계 접근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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