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칠 솜씨 일서 모셔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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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칠의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 우리 나라 나전칠기장인들이 진출하게 됐다. 한국나전칠기 보호협회(회장 이칠룡)는 12일 해체·복원공사를 앞두고 있는 일본 최대의 요정 아숙원의 실내장식 일체를 도급 맡아 앞으로 10년 동안 연인원 4백 명 이상의 협회원들을 현장에 파견키로 했다
협회 측은 아숙원과의 계약에 따라 지난1일 이미 금년도 파견인원 15명 가운데 대표 전룡복 씨(37·예린 칠 예사대표)를 포함한 1진 8명을 동경으로 출발시켰고 내년부터는 해마다 각 40명씩의 기술자들을 10년 동안 계속 보낸다는 것이다.
한국의 나전칠기 장인들이 일본에 진출하게 된 것은 해체 복원공사를 앞둔 아숙원 측의 실내·복도벽면과 천장 자개장식(나전칠기)을 일본 내 기술로는 복원하거나 보수·제작할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아숙원 측은 오랫동안 고심 끝에 우리 나라에 전문기술자 파견을 요청하게됐다.
이는 전통공예의 맥을 이어 묵묵히 그늘에서 일해온 한국나전칠기예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기술이 이른바「칠의 나라」라는 데서 유래된 JAPAN(일본)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룡복 씨 등 1진 8명은 동경 도착 즉시 이와테(암수)현에 있는 옛「하코이시」 (상석)소학교자리에 대한민국 칠예 연구소를 열고 자체연수에 착수하는 한편, 아숙원 복원 공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술요원들은 정식취업이 안돼 연수명목으로 일본에 파견되며 전씨를 제외하고는 1인당 월1백만 원 정도의 급료를 받게 된다.
동경의 메구로(목흑)구「메구로가와」 (목흑천)에 연해 있는 아숙원 본관은 1931년에 중국요리 집으로 지어진 것으로 18년이 지난 1949년 대대적인 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목조 3층의 일본식 건물.
길이만 2백50m에 연건평이 1만평이나 되는 거대한 건물 내에는 연회장·결혼식장·숙박용 객실 등 대소 약50개의 방이 있는데 방 구조가 각기 다른데다 실내·복도의 벽면과 천장이 모두 나전칠기로 장식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숙원 건물의 해체·복원은 메구로가와의 범람을 막기 위한 방재 사업을 위해 동경도 측이 강양 안의 제방을 강화하고 제방 뒤쪽으로 폭4m의 관리용 도로를 내기로 했기 때문.
처음에는 건물을 모두 파괴한 뒤 새 모양의 건물을 짓자는 의견도 대두했으나『소화초기의 일본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몇 남지 않은 건물의 하나이며 사회사 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없애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사회각계의 반발 때문에 해체 후 장소만 조금 옮겨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숙권 해체·복원 공사는 건물이 호화로운데다 지극히 섬세한 수공을 요하는 것인 만큼 막대한 규모의 돈이 필요한데 금년도의 공사외형 발주 액만도 7억엔(한임35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국나전 칠기 보호협회의 이칠룡 회장은 『한국의 나전칠기장인들이 칠예술의 본 고장을 자처하는 일본에 진출함으로써 우리민족의 문화적 우수성과 독자성을 내외에 과시할 수 있게 된 것에 한없는 자긍심을 느낀다』며 『이를 계기로 우리 나라에서도 나전칠기가 과거처럼 가구·집기 류의 장식에 그치지 않고 고층건물의 벽화나 기타 본격적인 미술품 제작에도 적극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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