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남도 사투리 권리 회복에 한 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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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라도 우리 탯말
한새암 외 지음, 소금나무, 336쪽, 1만원

영화'왕의 남자'를 연출했던 이준익 감독의 전작 '황산벌'(사진)에서 '거시기'란 말의 위력은 대단했다. 백제 계백 장군의 입에서 수없이 튀어나온 거시기의 뜻을 파악하느라 신라군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참으로 거시기한 영화였다. 거시기는 불분명한 사안을 놓고서도 서로 뜻이 통하는 만능 어휘다. 표준말이라지만 남도 사람들이 많이 쓴다. 거시기보다 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머시기'가 있다.

민속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최명희의 소설 '혼불'.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혼불'은 제 고향 전라도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생명의 불''정신의 불'을 뜻한다"고 말했다. 지금 '혼불'은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렇다. 이 책은 사투리의 복권을 시도한다. 탯말은 저자들이 어머니의 태(胎) 속에 있을 때부터 듣고 배워온 사투리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말의 획일성을 넘어 각 지역 사투리의 다양성.친근감을 살려내자고 주장한다. 언어의 민주화랄까. 서로 같은 뜻인 '개땅쇠'(전라도)'문딩이'(경상도)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인 김영랑의 시 등 탯말이 풍성한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가상의 얘기도 지어내고, 나아가 사전까지 한데 묶은 저자들의 노고가 참으로 거시기하다. 책을 끝낸 그들은 "오매, 나 시방 기분 한 번 허벌나게 좋아분지네"라며 어깨춤을 덩실거리지 않을까. 경상도.제주도 편도 준비 중이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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