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 정책도 보수화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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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선 금욕을 강조하는 새로운 학교 성교육, 읽기와 수학 교육을 강조하는 낙제 방지법과 같은 보수적인 교육 정책들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기독교 색채가 짙은 보수주의 물결이 교육의 기본 방향까지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 부시 행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새로운 학교 성교육과 낙제 방지법이 논쟁을 부르고 있다고 각각 보도했다.

◆ "금욕적 성교육은 곤란"=최근 미국 성교육의 무게 중심이 금욕 강조 쪽으로 기울면서 큰 반발을 낳고 있다. 그간의 성교육은 임신 과정, 피임 방법 등 정보 제공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전통은 기독교 성향이 짙은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달라졌다. 성교육이 혼전 성관계의 부작용, 악성 성병의 위험, 피임 실패 가능성 등을 강조하며 청소년기의 금욕을 요구하는 설교로 변질한 것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금욕주의 교육을 확산하기 위해 그동안 7억7900만 달러(약 7800억원)의 연방 예산을 사용했다.

그러나 많은 교육단체와 학부모들은 "금욕 일변도의 성교육만을 강조하면 올바른 성 지식 전달이 제대로 안 돼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혼전 임신과 성병 등을 막으려면 효과적인 피임기구 사용이 필요한데도 금욕주의적 성교육에선 피임의 실패 가능성을 강조,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성교육 방식을 둘러싼 의견은 주에 따라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정보 제공식 성교육에 찬성하는 상당수의 주들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해 온 금욕 일변도의 교육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먼저 뉴욕주는 "금욕 외에 피임 교육에도 정부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강한 청소년 법'을 제정했다. 로드아일랜드 교육청은 금욕 교육에 연방 예산을 사용하는 것을 아예 금지했다.

반면 보수 성향이 짙은 주에선 노골적인 성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사우스다코타는 학교에서 피임교육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캔자스주는 성교육 강좌를 듣고 싶은 학생들은 부모의 서명을 받아오게 했다.

◆ 낙제 방지법 정당성 논란=부시 행정부는 '2014년까지 모든 학생이 읽기와 수학을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의 낙제 방지법을 2002년 공포했다. 이 법은 2014년 이전이라도 이해할 만큼 성적이 올라가지 않으면 주 정부가 시당국의 학교 운영.감독권을 뺏을 수 있도록 하는 벌칙 조항을 만들었다. 이 벌칙 조항이 이번에 처음 적용되면서 법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메릴랜드주 학교위원회는 29일 이 법에 따라 볼티모어시의 4개 고교와 7개 중학교에 대한 시 당국의 감독권을 박탈했다. 표적이 된 학교들은 주 정부가 실시한 생물 시험에서 불과 1.4%만이 통과하는 등 지난 9년간 성적이 제자리걸음을 해 왔다.

학교 당국 등 이 법에 반대하는 측은 "창의성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읽기와 수학 등을 중시하는 낙제 방지법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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