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휴먼골프 <4> 기상캐스터 조석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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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골프에서도 날씨를 잘 알고 이용하는 게 최고의 지혜죠." 골프와 날씨를 연결하는 이 사람은 기상캐스터 조석준씨다. 역시 직업은 속일 수 없다. 그는 현재 한국기상방송인협회 회장이며 국가 R&D 사업 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날씨 탓하는 사람은 골프를 잘 칠 수 없어요. 안개가 잔뜩 껴 있을 때는 잘 치다가 안개가 걷히면 헤드업 하면서 오히려 무너지잖아요."

1981년 KBS에서 기상전문기자 1호로 방송을 시작한 그는 20년 동안 1만 번 정도 방송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기상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다 보니 행동도 조신해졌다. 비를 맞고 다니면 신뢰성이 떨어질 것을 걱정해 사무실이나 자동차에 우산을 여러 개 준비해 놓고 비가 올라치면 얼른 들고 나선다. 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날씨가 맑아도 그가 우산을 들고 가면 다른 직원들도 모두 우산을 챙겼다고 한다. 골프장에서는 이런 일도 있다. 비 오는 날, 클럽하우스까지 왔다가 골프를 칠까 말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조씨가 필드로 나가면 우르르 따라나간다는 것이다. 하루는 비 맞으면서 칠 각오를 하고 필드에 나갔는데 그 뒤로 여러 팀이 몰려나오는 바람에 모두 흠뻑 비를 맞은 일이 있었다.

"그 뒤로는 비 맞고 치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참죠."

나는 조석준씨와 두세 달에 한 번씩 라운드를 한다. 공군장교 후배인데다 몇 년을 방송국에 같이 다닌 인연으로 가까운 사이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서울대 재학시절 축구선수였고, 공군장교 시절에는 참모총장의 테니스 파트너였던 스포츠맨이다.

"그 당시 서울대 축구부는 정식 경기에서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그냥 학생이었고 고려대에는 차범근.남대식 같은 선수가 뛰고 있었으니까 0-7이나 0-5로 지는 게 보통이었죠. 0-3으로만 져도 축하파티를 할 정도였어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축구를 하면서도 행복했던 것은 스포츠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매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기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려고 운동을 한다는 그는 골프 구력이 17년이나 된다. 하지만 실력은 고작 80대 후반이다. 축구와 테니스로 다져진 1m77cm의 멋진 체격치고는 점수가 아쉽다.

"축구로 다져진 하체와 테니스로 다져진 상체를 잘 쓰면 곧바로 싱글로 갈 수 있을 텐데."

이런 내 말에 그는 그냥 맘씨 좋아 보이는 특유의 표정으로 웃는다.

"0-3으로 지고도 행복했는데 보기플레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한 거죠, 어차피 다들 행복을 느끼려고 골프 하는 거 아닙니까."

이날도 그는 88타를 쳤다. 불만족스러운 스코어일 텐데도 그는 역시 씨익 웃는다. 그와 라운드를 하고 나면 비 온 뒤 갠 날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가 기상전문가인가 아니면 고객만족 전문가인가 헷갈린다.

오늘의 원포인트 레슨은 '골프의 최종 목표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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