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고통' 한국이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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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자국 통화가치의 급등(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국내 기업이 겪는 고통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LG경제연구원은 30일 '원화 절상, 기업 고통 너무 크다' 보고서에서 "최근 환율 급락과 수출의존도, 결제 통화의 달러화 집중도를 감안하면 국내 기업의 고통 호소는 결코 호들갑이 아니다"며 "원화절상에 따른 우리 기업의 어려움은 다른 나라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원화 절상, 세계 최고 수준=보고서에 따르면 달러화 약세가 시작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원화는 달러에 대해 34.6% 절상돼 절상률이 주요 통화 가운데 유로(38.3%)와 더불어 가장 높았다. 이 기간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 통화의 절상률은 각각 14.6%, 7.5%에 불과했다.

또 한국의 수출의존도(수출액÷명목 국내총생산)는 2004년 기준으로 38%에 달해 유로권 국가는 물론 중국(36%)과 일본(11.5%)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는 환율 변화에 경제가 크게 휘둘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같은 원화가치 급등의 근본적 원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재정수지.경상수지 적자 악화에 따른 여파여서 별다른 해소책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높은 달러결제 비중도 부담=수출 상품에 대한 달러화 결제비율이 높은 것도 기업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달러화 결제비중이 한국은 지난해 82.4%에 달해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원화표시 수출액 감소와 환차손 부담이 더욱 크다. 일본은 달러 결제비율이 52.4% 수준이고, 독일 등 유로권 국가의 역외(유로권 외) 무역 달러화 결제율은 30% 안팎에 불과하다.

구조적으로 환율 변화에 취약한 데다 기업이 환율 변동분을 수출 가격에 떠넘길 수 있는 능력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4년간의 원화 강세 기간에 국내 기업의 평균 전가율(달러표시 수출가격 변화율÷환율 변화율)은 0.27로 일본(0.7), 대만(0.68), 유로권(1.0) 등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는 엔화가 10% 절상될 때 일본의 수출가격이 7% 정도 올랐지만, 한국의 경우 원화 가치가 10% 높아져도 수출가격을 불과 2.7%밖에 높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 하락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출비중을 갑자기 낮추기도 어려운 만큼 원화절상 대응책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수출 결제통화를 다변화하면서,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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