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금욕 수련회'… 술·담배 금지령 취침 점호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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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기상, 주류 반입과 흡연 금지, 교육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오후 9시30분 취침 점호, 4인 1실에 공동세면장 사용'.

30일부터 1박2일간 원주의 가나안 농군학교에 입소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29일 전달된 내용이다. '금욕 수련회'다. 조별로 자유롭게 토론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뒤풀이하던 과거의 느슨한 연찬회와는 확 달라졌다. 구보와 체조, 청소, 농장 체험과 자아성찰, 특강 등의 맞춤 프로그램에 자유시간은 없다. 당초 해병대 입소까지 검토했다가 중진들의 반발로 방향을 틀었지만 의원들의 '정신 무장'을 강조하는 취지는 같다.

여기엔 근성 부족의 '웰빙 정당'이란 평가를 받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고민이 배어 있다. 최근 한나라당은 최연희 전 총장의 성추행 파문,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 테니스'에 허남식 부산시장 부인 관용차 이용 논란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진 악재들에 시달려 왔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당내 경쟁은 과열로 치닫고, 공천 잡음도 잦다. 수도권 드림팀 후보 영입 등 열린우리당의 역동적인 움직임도 부담스럽다.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따끔한 예방주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당을 쇄신해야겠다는 지도부의 입장은 절박하다.

허태열 사무총장은 "흐트러진 자세를 가다듬고 국민에게 수신(修身)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과거 동해안에서 잡은 오징어를 산 채로 서울로 실어올 때 수조 속에 게를 넣어두면 오징어들의 생존율이 높았다. 이런 긴장감이 필요하다"(이방호 정책위의장)거나 "한나라당 전체가 하나 되는 집체교육"(이재오 원내대표)이라는 말들에서는 위기감마저 묻어난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 전원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불참 의원들에겐 하반기 상임위 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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