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골프 금지' 첫 주말 어떻게 보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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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만 동네북이냐"=서울시의 고위 공무원은 26일 "업자와 술을 먹으면 괜찮고 골프를 하면 안 되는 거냐"고 불평을 토로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게 해야지, 아이들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무조건 막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처럼 본지가 확인한 고위 공무원 중에선 불쾌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청렴위의 골프 금지조치는 마치 우리가 업자들로부터 뇌물성 골프접대나 받는 것처럼 매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간부는 "오히려 음성적인 골프 모임이 더 많아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또 다른 고위 공무원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도 이런 식의 지시가 있었다"면서 "머지않아 흐지부지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대구시의 한 고위 공무원은 "우리 시가 벌이고 있는 정보화 사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민간 전문가에게서 얘기를 들으려고 내가 먼저 골프를 치자고 제안했는데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부산 지역 공무원은 "이해찬 총리는 골프광이어서 앞뒤 안 가리고 골프를 쳤지만 일반 공무원들 중에서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불평을 토로했다. 반면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그동안 체면 때문에 골프 모임에 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면서 "청렴위 덕분에 골프 취소하는 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 "걸리면 약도 없다"=과학기술부의 한 간부는 "25일의 골프약속을 취소했다"면서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약도 없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도 "직무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과 골프를 치기로 했지만 괜히 오해를 살까봐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부처 차원의 집안 단속도 있었다.

재경부와 기획예산처 등은 부내 e-메일을 돌려 골프 자제를 당부했다. 울산 컨트리클럽에선 26일 8개 팀이 예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골프장에서 예약취소 사태는 거의 없었다. 빠지는 공무원 대신 다른 사람으로 자리를 메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울산 보라CC 관계자는 "부킹(예약)을 해달라는 공무원의 청탁전화는 사라졌다"고 전했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이 전 총리의 골프건이 터지자마자 골프 약속을 다 취소했다"고 말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업자들과의 약속은 취소했지만 퇴직 공무원들과 26일 각자 돈을 내고 골프를 쳤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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