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연이은 맞끊기 강수, 드디어 승부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국 하이라이트>
○ . 이창호 9단(한국) ● . 뤄시허 9단(중국)

움직임 중에 고요함이 있고(動中靜),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다(靜中動). 바둑은 전투와 타협의 끝없는 반복이다. 강수를 둔다는 것은 타협하려는 것이고, 타협하려는 제스처는 이미 기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는 그래서 바둑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장면 1(114~119)=백은 우변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하변을 차지했고 여세를 몰아 중앙을 경영하려 한다. 중앙 백이 안개를 헤치고 위용을 드러내자 뤄시허(羅洗河) 9단의 고민도 깊어져 간다. 어느덧 국면은 미세해졌다. 중앙 백집이 어느 선에서 결정되느냐가 곧 승부가 되었다. 113의 삭감에 이창호 9단이 114로 강렬히 부딪쳐 간 것도 지금의 긴박한 국면을 잘 말해준다. 한 줄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다. 뤄시허는 115로 젖혀왔고 이창호는 노타임으로 116로 맞끊었다. 최강수다.

번개 같은 속기를 자랑해온 뤄시허가 이 대목에서 한없는 장고에 빠져들었다. 무려 9분 후(뤄시허로선 이번 삼성화재배 최대의 장고다) 그는 117로 붙여갔고 119로 맞끊었다. 중앙과 비슷한 모습이다. 왜 이런 수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참고도=백의 강수에 놀라 흑1로 방어자세를 취하면 백은 빙긋 웃으며 2, 4로 중앙 집을 지어버린다. 백이 우세해진다. 117, 119는 중앙의 반격을 노리는 수순.

장면 2(120~130)=124로 잡자 125, 127로 되몬다(128은 이음). 이런 수순은 자칫 손해일 수 있지만 뤄시허의 목적은 129로 움직이며 중앙에서 좀 더 강하게 버티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원병을 만든 것이다. 드디어 승부처가 왔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