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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전을 가질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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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떤 꿈과 소망을 갖느냐에 따라 대학시절은 그들의 삶과 사회의 미래 향방을 좌우한다. 비전은 자기와 공동체를 바꾼다. 비전의 크기가 오늘의 준비와 마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실현을 위한 개인적 비전은 삶을 움직이는 근본 동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적 비전을 사회적 비전에 근접시키려는 헌신 의지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개인적 꿈은 사회적 요구와 만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마틴 루터 킹은 "인간은 자신의 좁은 사적 이해(利害)를 넘어 모든 인류에 대한 더 넓은 관심으로 나아가기 전까지는 (참된)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고까지 말한다. 두 비전이 일치, 개인성취와 사회발전이 병진(竝進)하는 삶은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부의 목적은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을 치료, 자기와 타인을 '함께'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다. "학문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 현존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 있다"(브레히트)는 언명은 공부의 한 지침이 된다. 지식을 인간, 특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인간 비극을 초래하는 고안들이 인간의 지식발전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심, 반복되는 빈곤.전쟁.독재.환경문제에 대해 인간본성과 사회제도에 대한 성찰을 통해 개인의 행복과 바람직한 사회적.지구적 장치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지혜롭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기성의 행태.제도.이념의 밝은 면은 키우되, 부조리한 요소에 쉽게 굴복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 안락이 도전의지를 박탈, 창조를 위한 모험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삶을 통해 우리를 감동시키는 한편 사회발전에 크게 헌신한 인물들은 고난 속에 사회적 비전을 실현하려 고투한 존재들이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많은 싹을 틔우는 희생이 손해가 아닌 소망을 위한 밀알임을 깨닫는다.

개인과 사회를 위한 공통의 '비전 만들기'를 위해 평생 반복하는 세 가지 만남을 강조하고 싶다. 어떤 '사람' '책' '상황'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크게, 때론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과 상황과의 만남이 제한된 대학 시절엔 공부와 독서가 미래를 좌우한다. 그때 '질문'은 가장 중요한 공부방법이 된다. 문제(제기)가 없다면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불가능하다. 둘째, 기존시각과 사회에 대한 '비판'은 공부의 요체가 된다. 비판이 없다면 대안 모색은 물론 과학적 분석으로 안내하는 이성적 사고능력을 기를 수가 없다. 셋째, 세계와 전체에 대한 통찰이다. 각고의 연마를 통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 하나, 전문성의 울타리에 갇혀 인간.사회.세계를 보지 못해선 안 된다. 인간 없는 지식, 세계 없는 우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세상의 직업에는 '의사'와 '디자이너' 둘이 존재한다. 의사는 개인과 사회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유한다. 디자이너는 삶과 사회를 구상하고 건설한다. 신체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에 더해 우리는 영혼.교육.제도를 치료할 많은 '사회적 의사'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그런 분야의 대안을 제시하고 건설할 '사회적 디자이너'를 필요로 한다. 진단 없는 대안은 없다. 따라서 의사와 디자이너는 사실 하나인 것이다.

간디는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라고 했다. 우리 모두 4년 동안 잘 준비해 개인적 비전을 사회와 세계의 비전으로 근접시켜 사회와 세계를 향한 좋은 의사요 좋은 디자이너가 되자.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다른 영혼과 미래에 조금이라도 좋은 향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되도록 노력하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