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향기] 혈액 비상 통로 '글로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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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심장에서 나온 피는 대동맥.세동맥.모세혈관.세정맥 순으로 순환한다. 이 당연한 순환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혈액은 갈 곳을 잃고 결국 사람은 죽어야 한다. 추위와 공포에 내몰렸을 때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은 모세혈관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혈액이 일시적으로 차단됐기 때문이다. 모세혈관은 세동맥과 세정맥을 잇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모세혈관이 오그라들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혈액이 정상적으로 순환을 하지 못해 뇌졸중이나 심장병과 같은 질환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모세혈관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혈액은 세동맥에서 세정맥으로 무난히 이동해 원래의 순환기능을 수행해 낸다. 이런 현상을 혈액의 '바이패스(By-pass) 현상'이라 하며, 이 비상통로를 '글로뮈'라고 한다. 글로뮈는 모세혈관이 수축할 때 세동맥의 피가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세정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미세한 우회혈관으로, 모세혈관마다 1개씩 붙어 있다. 마치 철도에서의 전철로나 하천공학에서의 방수로와 같은 옆길이다. 글로뮈는 1707년 프랑스의 해부학자 레알리 레알리스에 의해 동물생식기의 동정맥문합부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현대의학에서는 '혈액 순환의 원동력은 심장의 펌프작용에 있다'고 보는 반면, 자연의학에서는 '모세혈관과 글로뮈, 심장의 협동작업에 의해 혈액순환이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에 글로뮈를 중요시한다.

모세혈관의 일시적인 기능정지를 대비해 글로뮈가 인체를 무탈하게 하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나, 문제는 이 글로뮈가 말썽을 일으켰을 경우다. 글로뮈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혈액은 미세한 모세혈관벽에 부딪혀 모세혈관을 파괴하거나 피하출혈을 일으키게 되는데 머리에 생기면 뇌출혈, 장기에 생기면 내출혈이 되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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