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 요청 무시하고 탈북여성 북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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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말 한국행을 희망하며 중국 내 한국 학교 진입을 시도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 여성이 북한에 송환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정부는 이 여성을 북송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해 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탈북 여성 이춘실(가명.32)씨가 2월 15일 중국 공안부에 의해 북송 조치됐다는 통보를 20일 중국 외교부로부터 받았다"며 "중국 측은 이씨가 불가침권이 인정되지 않는 비 외교기관의 외부에서 공안기관에 체포됐기 때문에 관련 법규에 따라 처리했다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30일 다롄 한국국제학교에 들어가려다 거절당한 뒤 12월 2일 베이징 한국 국제학교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비원의 신고로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 이씨의 친언니라고 주장한 춘화(가명)씨는 이날 춘실씨의 강제 북송 소식을 접한 뒤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떡하나. 숨이 막힌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수년 전 탈북한 뒤 남한에 정착한 춘화씨는 "외교부에 수없이 전화를 하고 담당자에게 메모를 남겨놓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나중에 외교부는 담당자의 인사 이동 때문이라고 변명했다"고 말했다.

동생의 한국행을 돕기 위해 국제학교 진입 때 함께 들어가려 했던 춘화씨는 중국 공안에 끌려가는 동생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했다. 특히 체포 직후 동생이 극약을 먹고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안타까움은 더했다고 한다. 춘화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북한인권국제대회장에서 각국 관계자에게 동생의 구명을 호소했다. 또 유엔과 국제 인권단체에 팩스를 보내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다. 팩스비만 100만원이 넘게 들 정도였지만 결국 허사로 돌아갔다는 게 춘화씨의 얘기였다. 통일부 등 정부 측은 그러나 춘화씨의 주장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고만 했다.

중국 당국의 이씨 북송 조치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앞으로 불가침권이 인정되는 외교기관에 진입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교기관이 아닌 곳에서 한국행을 시도하다 잡힌 탈북자들에 대해선 중국 당국이 전원 북송 조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측은 지난해 8월 옌타이 한국국제학교 진입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탈북자 7명에 대해서도 10월 북송 조치 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이 이씨를 2월 15일 북송해 놓고 한 달이 지나서야 이를 통보해온 데 대해 주 중국 공사를 통해 중국 외교부에 항의했다"며 "정부의 지속적인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북송을 강행한 데 대해서도 중국 측에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북송된 이씨는 북한에서 남편이 굶주려 숨진 뒤 2004년 5월 아들과 함께 탈북했으나 탈북 직후 아들마저 병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승희.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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