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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는 '지식경제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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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가 보기에는 지식경제론은 허점이 많을 뿐 아니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 우선 이 주장은 지식경제가 선진국의 전유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같은 선진국은 컴퓨터.정보통신.연구개발(R&D) 같은 지식경제에 전념하고, 후진국은 농업.제조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초, 지식경제 신화는 하나 둘씩 깨어지고 있다. 인도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인도는 지금 '선진국=지식경제'라는 등식을 깨는 중이다. 수십만에 이르는 인도의 컴퓨터.정보통신 인력은 저렴한 임금을 무기로 미국과 유럽의 지식경제 근로자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연구개발 분야에 자체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제조업은 제3국에 맡겨도 좋다는 지식산업 논리는 미국의 제조업을 심각하게 쇠퇴시켰다. 이라크 사태를 보자. 미국은 최근 이라크전 개전 3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미군은 최근에서야 비로소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에 전투용 차량인 '험비(Humvees)'를 충분히 대주고 있다. 미국에서 군용 험비를 생산하는 기업이 단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방탄복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평도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저격병과 지뢰, 각종 폭발물로 미군을 공격하는데 막상 일선에 배치된 미군들은 이를 막아줄 방탄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이는 미국 제조업의 쇠퇴를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미국엔 불과 26만8000명의 병력밖에 없었다. 그 이듬해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징병제를 도입해 1400만 명의 육.해.공 병력을 확보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이 불과 1년 새 이 엄청난 병력을 100% 무장시킨 것은 물론 군수물자를 제때에 공급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엄청난 제조 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41년 10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한 지 넉 달 뒤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냈다. 루스벨트는 이 서한에서 러시아에 5600대의 군용 트럭과 1만t의 탄약, 20만 켤레의 군화를 포함한 67종의 전쟁물자를 당장 보내겠다고 약속한 다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미군 수뇌부는 반세기 전에 비해 경영관리 능력이 떨어지고 굼뜨다. 미 공군은 81년 차세대 전투기인 F/A-22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전투기는 아직 실전 배치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애초 3700만 달러로 예상됐던 이 전투기의 대당 구매 비용은 현재 2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착수한 프랑스는 2001년 이미 최신예 전투기 '라팔'을 실천 배치했다.

결론적으로 지식경제론은 허점이 많은 것은 물론 이를 신봉하는 것은 위험하기조차 하다. 교육이나 지식은 과거 생각하던 것과 달리 상당히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필요한 물자를 제때 못 만들 경우 그 사회의 중추적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또 한 사회가 제조업을 포기하고 지식경제만을 쥐고 있으면 그 하부 구조가 부실해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지식경제조차 인도 같은 신흥 지식경제국과 치열한 각축을 벌여야 할 것이다.

윌리엄 파프 IHT 칼럼니스트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