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고 슬픈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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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내버스 한강 추락」이라는 치욕적인 사고가 대낮 수도 서울에서 발생했다.
올림픽을 개최하고 선진 진입 일보전이라는 나라에서 창피하고 슬픈 일이다. 졸지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승객들의 처지는 더욱 슬프고 가슴 아프다.
이번 사고는 예외 없이 인재였고 후진국에서도 잘 볼 수 없는 원시적 사고였다. 난폭 운전에 정비 불량, 허술한 교통 시설 등 이 곁으로 나타난 원인인 것 같다. 운전자가 추월과 과속·차선 위반 등 거칠고 못된 운전 습관에 길들여져 있지 않았던들 이런 어이없는 사고는 일어날수 없었을 것이다. 또 버스회사가 배차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던들, 낡은 재생 타이어를 갈아 끼었더라도 사고는 모면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복합요인들이 얽히고 설 켜 끝내는 엄청난 재앙을 빚고 말았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근본 원인이 교통정책의 빈곤과 행정부재에 곁들여 사회적 병리가 낳은 구조적 사고임을 알 수 있다. 운전자가 법규를 위반하며 난 폭과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배차 시간이 빡빡하게 짜여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에 연유한다. 지금처럼 경쟁노선이 중첩되어 치열한 경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회 차시간을 넉넉하게 잡을 수 없다.
공동 배차 제나 노선이 중복 안되게 합리적으로 조정되어 있으면 그토록 무리한 운행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치열한 달리기 경쟁을 하지 않으면 버스업자가 보다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없는 현행 교통체계를 그대로 놓아두는 한 또 다른 추락사고는 언제 일어나느냐가 문제이지 가능성은 항상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버스업자와 살인운전자를 두둔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소중함이 존중되는 사회고 풍토였다면 무모한 운전도 조금은 덜했을 것이고 업자 스스로도 달리는 흉기를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단 두 건의 화재에서 30명 가까운 젊은 여성들이 꽃다운 나이에 숨져 간 일이 있었다. 그때도 업주의 의식과 심성에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면 안전에 그처럼 소홀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고도 예외가 아니다. 수입만 챙기고 승객의 안전이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배금에 물든 병리가 끔찍한 사고를 유발한 셈이다. 인간을 경시하고 안전을 게을리 하는 업자와 행정은 더 이상 묵인될 수 없다.
사회가 준엄하게 응징하고 발붙일 수 없도록 뿌리째 도려내야만 한다. 잇속에만 신경을 쓰고 남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업자, 시민의 생명 보호에 제몫을 못하는 행정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돼선 안 된다.
국민은 더 이상 이들의 희생물이 될 수 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관계 당사자들은 다같이 뼈저린 자생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행정당국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교통행정 전반에 걸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버스 공영화나 공동 배차 제가되든 어떠한 형태로라도 혁신적인 시책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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