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딸' 1년간 도청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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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3월 13일자 15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13일 열린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 재판에서다. 이날 재판에서 김은성(61.수감) 전 국정원 2차장은 "대통령 사생활과 관련해 모녀 관계인 2명 및 주변 인물을 도청했다"며 "2000년 6월 모친의 언니와 유명 신부 간의 쇼킹한 통화를 도청했다"고 말했다. 2000년 6월은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의 어머니 김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점이다. 그는 "모녀에 대한 도청은 1년간 이뤄졌고, 내용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에게 '생첩보'로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생첩보는 보고서 형태로 정리하지 않은 도청 원문이다.

김 전 차장은 "부임 직후인 2000년 중반께 도청 실무자로부터 (모녀) 도청 내용을 보고받은 뒤 이를 임 원장에게 전했다"며 "당시 임 원장은 '모녀와 관련된 내용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된 것이니 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통치권자와 관련된 내용이라 당시 이를 매우 중요하게 취급했다"는 주장도 했다.

김 전 차장은 또 1999년 엄익준 당시 국정원 2차장이 DJ의 사생활과 관련해 특정 인물들을 도청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도 시인했다. 그는 "엄 전 차장이 김 전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해 특정 인물들을 도청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도청 실무자들이 법정에서 시인했는데, 이게 위증이냐"는 검찰 측 질문에 "위증이 아니다"고 말했다.

"80년대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도청을 지시해 관련자들이 지난해 11월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됐는데, 그러한 도청이 왜 이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검찰 질문에 김 전 차장은 "통치권자를 보호하고 스캔들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 "국정원장, 도청 알았을 것"=이날 재판에서 김 전 차장은 신건.임동원 전 원장 등을 향해 "원장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불리한 그의 진술은 계속됐다. 그는 "장비.예산을 총괄하는 원장이 도청을 모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도청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국정원 출신이 아닌 이른바 '나그네'여서 도청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신씨 측 주장과 관련해 "원장에겐 정보가 차단되지 않는 만큼 (신씨 측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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