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외진출 탓 말고 국내투자 여건 갖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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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아자동차가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시에 12억 달러(약 1조1800억원)를 들여 연간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현지 공장을 짓기로 했다. 현대자동차의 앨라배마 공장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에 현지 공장을 갖게 된다. 이로써 기아차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시장에서 자동차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기아차 공장을 유치한 조지아주는 이번 투자를 통해 기아차의 현지 채용인원 2500명과 동반 진출하는 부품회사들의 채용인원 2000여 명을 합쳐 모두 4500여 개의 일자리를 얻게 됐다. 기업들의 투자 부진 속에 일자리 만들기에 부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아쉽기 짝이 없다. 이만한 공장을 국내에 짓는다면 수천 개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연관 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에 공장 입지를 국내에 국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은 토지.물류.소비시장.임금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국익을 앞세워 해외투자를 막는다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버틸 방법이 없다. 시장 접근성과 환율변동 위험의 회피, 물류비 절감 등의 면에서 기아차의 현지 투자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여기다 국내의 높은 토지비용, 고임금, 불안정한 노사 관계, 각종 규제까지 감안하면 국내에 공장을 지으라고 붙잡을 염치가 없다. 기아차뿐 아니라 이미 많은 기업이 이런 이유로 한국을 떠나고 있다.

문제는 떠나는 기업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국내에 남아 투자하겠다는 기업마저 등을 떼미는 온갖 규제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조지아주는 이번 기아차 유치를 위해 270만 평의 부지와 도로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일자리 창출의 대가로 지원금을 지급하며, 세금을 깎아주는 등 모두 4억1000만 달러에 이르는 인센티브를 내걸었다. 과연 정부는 국내 기업의 잔류와 신규 투자에 이만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떠나는 기업을 탓할 게 아니라 국내에 투자가 일어나도록 규제부터 푸는 일이 시급하다.